내 친구 커피믹스.
갑자기 그 노래가 떠오른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엄마는 오늘 회사에서 마지막 커피믹스를 타서 (아껴)
마시며 이 노래를 떠올렸어.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개사해서 되뇌었지.
"비만보다 먼 과체중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믹스 네 마음을 이젠 떠나리..."
엄마는 말이야. 다이어트하면서 식단조절 아주 쉬웠어.
차라리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힘들었지.
라면? 안 먹은 지 꽤 됐어. 대개 네 아빠의 주식이지.
과자? 굳이 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우리 집에서 편의점에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기에 비상으로 사놓는 것이지.
엄마는 찐 고구마만 먹어도 고구마케이크 안 부럽고, 양배추쌈에 양념간장 찍어먹어도 치킨이 안 떠올라.
근데 그런 내가 유일하게 이길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어.
바로 커피믹스야.
날씬하고 길게 잘 뻗은 윤기 나는 노란 봉투를 쓱 집어서 톡 뜯어 종이컵에 탈탈 털어 넣고, 정수기 뜨거운 물을 딱 2초만 받은 다음에 봉투 끝으로 쉭쉭 두어 바퀴 돌리면 채 녹지 않고 그 위를 회오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커피 알갱이가 날 반기지. 입술 끝으로 일부러 소리 나게 호로록거리며 그 뜨거운 갈색 액체를 한 모금하면...
아 상상만 해도 점심 식사 후의 식곤증이 가신단 말이야.
특히나 구내식당 메뉴가 중식처럼 기름지거나 얼큰한
찌개종류로 나오는 날이면 국물 한 숟갈 하자마자 엄마의 영혼은 이미 탕비실 벽에 기대서 커피믹스를 호로록하고 있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거의 하루에 4-5잔은 마신 것 같아. 결혼하기 전에는 네 마산 할머니와 일요일 아침에 'TV 동물농장'을 틀어놓고 커피믹스 한 잔씩 들고 건배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낙이었거든.
근데 아들아.
너를 가졌을 때에도 뱃속의 네 눈치를 보면서 디카페인 커피믹스를 하루 한 잔씩은 마셨던 내가. 지금도 차라리 밥을굶으면 굶었지 커피믹스 간헐적 단식은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커피믹스를 끊으려고 해.
엄마의 지금 상태는 최초의 몸무게에서 8kg 정도 감량한 상태로 비만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체중이거든. 커피믹스를 계속 먹다가는 여전히 비만보다 먼 과체중보다는 가까운 몸무게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아.
이제 두어 달 남은 다이어트에서 커피믹스까지 끊기로 마음먹었으니 엄마의 절절한 각오가 느껴지니?
물론 요즘 스테비아 커피믹스니 당이 없는 커피믹스이니 많지만 엄마에게 진짜 친구는 노란 옷을 입고 머리는 초록색으로 물든 윤기 나는 그 친구뿐이야.
나 요즘 자기 전에 스텝퍼도 30분씩 하고, 저녁 식단도 고구마 한 개, 구운란 2개 이렇게 먹고 있단 말이야. 근데 커피믹스까지 계속 먹어댔다가는 다이어트 안하느니만 못 하는 것 같아. 엄마 나름대로는 마지막 칼을 빼든거야.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옆에서 항상 같이 있어주었던
나의 노란 친구에게 매정한 이별을 고하며.
엄마는 마저 노래를 부르련다.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엄마, 눈물 닦고 살 좀 빼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