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치앙마이 한 달 살기.

8. 엄마와 딸, 딸과 엄마.

by 모루

엄마는 종종 나를 보며 얘기했다.


“쟤 나랑 진짜 안 맞아.”


그렇다. 나는 아빠랑 붕어빵이었다. 그럼에도 오리지날 팥 붕어빵이 아닌 짝퉁 슈크림 붕어빵 정도로 그칠 수 있었던 건, 생각보다 내 삶에 엄마의 영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한때 한비야 님을 존경했었다. 그녀의 여행기가 실화인지 아닌지 나는 읽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게 사실이고 아니고의 여부를 떠나 엄마는 막연히 세계여행을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나를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생 때 나 홀로 필리핀 땅에 보내버렸다. 가기 싫다며 공항에서도 엉엉 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결과적으로는 엄마에게 내 평생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엄마의 기행(?)은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오빠가 대학생 때 지인들과 중국/몽골 여행을 가겠다 했는데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 하여,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학생들 여행에까지 쫓아가게 된다.


그 이후로도 외박도 안 되고 통금도 10시가 넘어 본 적이 없는 집안에서 희한하게 해외여행 간다는 건 적극 지지하는 등, 참 우리 집도 이상했다. 통금 있는 집에서 도대체 남미 여행은 왜 찬성하냐고..


엄마와는 몇 번인가 자유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라오스의 아침시장에서 로컬 닭죽을 사 먹으며 깔깔거리기도 했고, 숯불 돼지 바베큐를 사 먹으며 동남아 돼지고기는 기깔나게 맛있다며 감탄하기도 했었다. 스페인에서는 닭볶음탕 양념이 모자라 짜파게티 스프를 부어놓고서는 너무 맛있어서 세비야 대성당은 생각도 안 난다며 웃기도 하고, 어딜 가도 음식이 다 소태마냥 짜서 엄마가 한 감바스가 제일 맛있다며 숙소에서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엄마와 다니면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 엄마가 오랫동안 꽃집을 운영했고, 나도 엄마의 일을 도왔었기 때문에 그냥 산책을 하며 꽃구경을 한다. “꽃기린이 저렇게 크네!”, “포인세티아가 원래는 저렇게 큰 나무야!” 하는 대화들. 다른 이들과는 나누기 어려운 대화들이라 사소하지만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지치면 커피를 마신다. 그게 엄마와 내 여행의 전부다.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안 맞는 성격 탓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정말 심하게 싸워 낯선 유럽 땅에서 엄마를 울린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매번 내게 고맙다고 한다. 엄마는 패키지여행이 답답하고 싫은데 내가 있어 자유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실은 나야말로 엄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말이다. 꽉 막히고 융통성 없는 이 성격이, 해외라도 나가지 않았으면 나조차도 스스로가 답답해 살지 못했을 것 같은데 부모님 덕분에 해외 생활을 많이 접해보며 유해진 부분들이 있다. 육아는 그 유해진 것들을 도로 원래대로 돌려놔서 날 숨 막히게 하지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떠나지 못할 비행기표를 검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