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노을 지는 페와 호수.
오늘은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야채시장에 가기로 했다.
아침으로 수제비를 떠먹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밀가루에서도 네팔 특유의 향신료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신나게 숟가락을 들었는데, 그릇을 비울 때 즈음엔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집 앞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언제나 옳다. 그러고 보니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카페 가는 걸 선호했었는데, 여기서는 커피를 주로 숙소에서 내려마시게 된다. 걸음마를 뗀 아이가 계속 돌아다니니 숙소 밖을 벗어나면 여유라는 걸 느낄 새가 없기 때문이었다.
야채시장으로 걸어가는 길. 저 너머로 또 설산이 보였다. 제주도 사는 사람들은 결국 여기도 저기도 다 비슷한 풍경처럼 느껴진다던데. 나도 나중엔 이 설산의 절경이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직은 특별한 이 나라의 모습을 감상하며 걸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시장 규모가 작다며 실망했지만, 나는 이곳의 야채나 과일들이 시내 상점보다 더 싱싱해 보여서 좋았다. 게다가 시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상추, 청경채, 딸기 같은 것들도 있었다.
갑자기 웬 야채가게 아저씨가 한국어로 “상추! 상추!”하며 불렀다. 홀린 듯 달려가 구경했더니, 은밀하게 두부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저씨를 실망시킬 수는 없지. 두부가 잔뜩 올라간 김치찌개를 상상하며, 당연히 두부도 샀다.
수박, 사과, 감자, 당근 등등. 규모가 작다고 실망했던 것치고는 너무나도 큰손인 엄마였다.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두부가 가득 든 김치찌개를 먹으려던 순간이었다. 낮잠을 자던 아이가 인형을 안고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여태껏 항상 어른들과 함께 자던 아이였다. 깨어보니 옆에 아무도 없어 무서웠을 법도 한데, 울지도 않고 혼자서 씩씩한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의 평범한 하루는, 아이의 성장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기특하던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새 또 밖으로 나가자고 성화라, 페와 호수로 나갔다.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와 라씨를 주문했다.
정작 엄마인 나와 아이가 함께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아빠한테 한 장 부탁했다.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임신 중이라지만, 살찌고 나이 든 중년 여자가 있었다. ‘이제 나는 정말 완벽한 아줌마의 길로 들어서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아줌마가 아줌마다운 걸.
오늘은 종일 너무 많이 걸어서 발이 아팠는데, 만장일치로 조금 더 걷게 되었다. 노을 진 페와 호수가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즐거운지, 졸려서 못 견디겠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버텼다. 저 멀리 대관람차가 보이자 팔을 동그랗게 굴리며 “삥(글)! 삥(글!)”을 외쳤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호숫가에 잔잔히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