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작이 없으면 영영 알지 못하는 것들.
준비물 때문에도 애를 참 많이 먹었다. 여태껏 여행 짐은 전날이나 돼야 부랴부랴 싸고, 떠나는 날까지도 “준비물은 여권이랑 카드만 있으면 됐지!” 하는 마인드로 떠났던 사람이라 더 많이 헤맸다.
대망의 출국 전날. 완벽히 쌌어도 불안했을 마음이, 완벽하지 않으니 괜히 더 찝찝했다. 빼먹으면 안 될 중대한 무언가를 빼먹은 것만 같은 기분에 괜히 쌌던 짐을 밤새도록 풀어 다시 뒤적거리길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와 여권, 카드만 있으면 됐지!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아이를 키우는 곳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가벼워졌다. 그저 아이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래, 그러니까 아이만 잘 챙기면 되지. 다른 건 없으면 가서 사면 된다. 일단 가자, 나가자.
당시 차가 없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로 이동을 했다. (짐 때문에 남편도 공항까지 동행했다.) 원래 집에서는 호환, 마마보다도 더 무서운 우리 아이가 밖에서는 순둥이 메소드 연기를 참 잘한다. 그래서 보통은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크게 떼를 쓰거나 징징대는 일이 없었는데 하필 오늘따라 공항 가는 내내 칭얼거리는 것이다! 비행기에서도 저렇게 울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또 앞섰다.
가뜩이나 비행기에서 우는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이 많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하는 비행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은데 만약 아이가 막무가내로 운다면 그 죄스러움을 대체 내 유릿장 같은 멘탈로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정말 “앵.” 소리 한 번 없이 6시간의 비행을 잘 견뎌내 주었다. 기압차로 인해 귀가 먹먹하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이 많대서 비행기가 이륙을 하는 동시에 미리 타 두었던 분유를 먹이고 쪽쪽이를 물려주니 잠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륙 전부터 잠들었던 아이는 이륙을 하자마자 잠이 깨서 비행 내내 잠을 자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는 5시간을 넘게 엄마와 나에게 공중부양 둥기둥기를 당하며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지 않은 것이 기특했고 울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무사히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옷을 갈아입힐 새도 없이 나왔기 때문에 아이는 여전히 긴팔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제 8개월밖에 안 된 놈이 뭐 다른 걸 알기나 아는 건지,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좋아했다. 여행의 온도, 습도, 공기, 냄새,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밤의 색.
누군가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는 나에게 그랬다. 본인은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죽어도 싫어서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매우 즐겨서 비행기를 탔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아이는 아무리 서럽게 울더라도 안아주면 금방 그치는 편이라 해외여행을 결심했었다. (사실 나도 폐 끼치는걸 꽤나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시작을 하지 않으면 영영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보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가 이렇게 비행기를 잘 타는 존재일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아이들이 다 비행을 괴롭고 힘들어하는 건 아니니 지레 겁먹지는 말자.
아이마다 성향과 성격, 기질과 호불호가 다 다르니 “아이와 함께 여행, 꼭 가세요! 강추 강추!“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데도 아이들은 기억을 못 할 거다라는 말, 아이와의 여행은 부모들의 욕심이라는 말,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건 진상이라는 말들 때문에 적어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도 못 하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욕심부려도 되지 않을까? 아빠도, 엄마도.
때로는 우리에게도 여권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