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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20. 2019

'흑당 라테 말고 시간 외 수당!'

에세이 #14 시간을 갈아 마시는 스무디 같은 느낌의 시간 외 수당.

'인생을 사랑하십니까?'



당신은 무슨 말로 답하실 겁니까?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철학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서양철학 도서를 꾸준히 읽었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철학자 이름이 말하기도 듣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스피노자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았습니다. 스피노자. 스피노자. 입으로 중얼거려보면 그 어감이 뭐랄까 약간 힙한 느낌이었습니다. 문득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당신은 어떤 철학자의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있습니까?'


아, 혼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조용히 소리 내서 스피노자라고 한 번 말해보세요. 진짜 느낌 있는 이름 같다니깐요.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말 나온 김에 스피노자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이 그저 좋아서 알아가기 시작했던 즈음 스피노자가 겪은 인생의 굴곡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스피노자가 유대인의 전통 탈무드 학교에서 유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랍비가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 집안에서 유대식 교육을 받고 자랐던 스피노자가 랍비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라틴어를 배우고 그리스도교를 접하면서 전통 유대교 신앙과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랍비로 가는 길을 중단합니다.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배경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삶을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대가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로부터 파문을 당합니다. 그 내용이 상당히 혹독합니다.




"천사들의 결의와 성인의 판결에 따라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영원히 추방한다.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저주받으라. 나갈 때도 들어올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 마옵시고 분노가 이 자를 향해 불타게 하소서! 어느 누구도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와 한 지붕에서 살아서도 안되며 그의 가까이에 가서도 안되고 그가 쓴 책을 봐서도 안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저주입니까? 천사들이 언제 결의했고 성인은 어떻게 저런 판단을 했는지 이유는 없습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저주입니다. 스피노자의 친할머니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스피노자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이 당시 종교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이었고 그것이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그 사회에 살면서 스피노자는 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을 하고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꾸벅 꾸벅 걸었습니다. 평생 안경 렌즈를 연마하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당시 독일 최고 대학의 교수 초빙을 받았음에도 거절합니다. 자유로운 철학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꽤 고집 있으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이미 400여 년 전에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삶을 살았던 철학자 스피노자가 더 좋아졌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밴저민 프랭클린의 대답입니다. 시간 관리, 계획과 실천 등 아무튼 뭔가 계획적인 그 무엇은 밴저민 할아버지가 1번인 듯해서 그분의 책을 읽었습니다. 결론은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계획대로 실천하거라.라고 말합니다.


야근이 잦은 연말입니다. 흑당이 유행이라며 흑당 한 번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 야근하는 날 저녁을 먹고 흑당 라테를 주문해서 달달하게 마셔가며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을 바라보니 일곱 시 이십 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문득, 흑당 라테 한 잔이 시간 외 수당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대략 계산해보니 흑당 라테 한 잔은 시간 외 수당 1시간 기준 약 10~15분과 비슷했습니다. 저는 흑당 라테가 아니라 저의 피 같은 시간을 가라 마시고 있었습니다. 너무 달달해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달콤한 그 무엇이 눈 앞에 있으면 본질은 반드시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야근을 하는가? 흑당 라테 한 잔을 위해서? 그건 아니니깐 패스하고. 이어서 노동을 시간으로 환산해서 급여를 받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습니다. 아마, 제 머릿속 어딘가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질문이었는데 큰 카펫으로 덮어버리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불쑥 나타나 또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저 자신과 간 보기를 하고 있습니다. 퇴사를 뒤로 미루는 이유를 찾아가며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마음과 지금이 아니면 언제 진짜 나 자신과 대면하며 궁핍하더라도 나만의 것으로 승부를 볼 수 있겠느냐는 마음 그 어디쯤에서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적당한 명분과 구실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올해로 10년째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내 일을 하며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만들고자 애썼습니다. 어떤 씨앗을 뿌렸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감히 제가 보낸 시간을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약간 게을렀으나 최선을 다했고 어떤 것이든 조금은 다른 결과를 만들고자 고민하며 애썼습니다. 습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30일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기도 했습니다. 아, 살을 빼겠다는 호기롭던 다짐은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2020년으로 미뤘습니다. 뭔가 살을 빼겠다는 결심은 새 해에 어울리기 때문에.


저는 제 인생을 사랑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살고 있는 내 삶을 사랑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을 구체화해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할지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한해가 다 가기 전에'를 남깁니다. 한 번 곱씹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나를 위해 정말 나를 위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리

하루쯤 전화도 꺼 버리고

정오까지 늦잠을 푹 자고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혼자 맛있는 밥을 천천히 먹고

읽고 싶던 책을 들고 밤을 지새리


한해가 다 가기 전에

고맙고 신세진 사람이야 많지만

먼저 가장 힘들었던 친구에게

장하다고 격려전화를 건네고

제일 원망이 많았던 친구에게

무표정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행여 내가 상처준 사람들에게

꽃다발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리


한해가 다 가기 전에

나에게도 작을 상을 수여하리

올 한해 정말 애 많이 썼다고

새해에는 더 나답게 살자고

너무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너무 인생을 빠르게 써 버리지 말고

더 자주 돌아보고 다지고 나누고

작아서 충만하고 낮아서 해맑아지고


한해가 다 가기 전에


- 시인 박노해 -

  




[사진출처 :  머니투데이(2019.08.16.) 기사 참조]

[내용출처 : wikipedia, 바뤼흐 스피노자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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