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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Mar 17. 2020

발리에서 만난 습관적 불안

에세이 #41

여행 중에 지겨움을 만났습니다. 일상을 떠나고 싶었고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하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고즈넉한 발리 우붓의 논이 펼쳐져 있고 파란색과 초록색의 싱그러움이 조화를 이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했습니다.


아침마다 새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에 깨고 깨끗한 하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지겨움이 밀려왔습니다.


'환장할 노릇'이란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발리 우붓에 위치한 천장이 높은 카페입니다. 지금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원인은 다름 아니라 '생각'에 있었습니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녀석은 저의 생각 끝에 다다른 '불안'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한국에 두고 왔던 '일'에 대한 생각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저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때가 오면 자극적인 영화를 보며 2~3시간 생각을 전환하고 약간 회피하는 습관이 있어서 볼만한 영화를 검색하다 '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멈췄습니다.


'뭐라도 쓰자.'


지금 하고 있는 생각에 따라 반응하는 마음과 감정, 무엇보다 몸의 컨디션은 어떤지를 살펴보고 글을 쓰자라고 마음먹고 앉아서 주저리주저리 앞도 뒤도 없는 글을 썼습니다.


글을 쓰다가 막히니 주변을 다시 보게 됩니다. 풍광을 만끽하기 위해 하늘과 논을 보고 새소리에 집중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누렸습니다.


못된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루틴을 바꾸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서 주변을 살펴보니 다시 못 볼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지만 마주한 현실에서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여행을 못하기 때문에? 천만에!


지독한 습관 때문에





불안도 습관입니다. 뇌는 불안감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합니다.


'나는 불안해야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나는 염려로 가득 차 힘들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이잖아.'
'이 정도 힘든 일은 다 하잖아.'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 찾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더 애를 쓰고 열심히 합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 생각을 끊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하늘을 보고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감사할 이유를 찾고 길든 짧은 글을 읽고 마음이 정돈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늘을 얼마나 더 올려다봐야 감정이 가라앉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다려봅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좀 불쌍하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왜 삶을 즐기지 못하고 불안을 동력으로 사는가?'


'야, 사람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지금부터 30년 참으면 연금으로 나이 들어 잘 살 수 있어.'
'다 불안해하면서 살아. 너만 그렇게 특별한 거 아니야.'


무수히 들었던 말에 마음이 젖어 저도 모르게 불안에 불안을 쌓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은 아닌지.


혹은 연금을 쌓는 마음으로 일상을 희생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쌓인 연금도 없는데.

.....


가슴이 아팠습니다. 불안과 염려로 하루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왜 불안한지, 왜 염려하는지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선사한 선물 같은 시간과 공간도 나의 불안과 염려로 제대로 느끼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것과 같아서.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즈음 발리의 새벽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내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 보이는 걸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몸도 마음도 가볍고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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