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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Mar 27. 2020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있다.

에세이 #43

외출 후 집에 들어와 손을 씻었습니다. 물기를 털고 나오다 양말이 젖었습니다. 당장 배고프니 먹고 나서 양말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식탁에 앉아 고구마와 우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발을 디딘 곳에 공교롭게 물티슈가 있었습니다. 조금 전 화장실을 나오며 양말이 젖은 사실을 완벽하게 잊어버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물티슈 케이스에서 물이 새는 건가?'


고구마와 우유를 먹으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물티슈 케이스는 비닐이고 그 안에 물티슈가 있는데 어떻게 물기가 있는 거지?'


그러다 생각이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하면


'물티슈가 불량인가?', '이 물티슈는 다른 제품에 비해서 물이 더 많이 함유되었나?'


오 마이 갓! 이런 골 때리는 생각까지 가버린 겁니다.


불과 1~2분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며 양말이 젖은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양말이 젖은 이유를 내가 물티슈를 밝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니!


내가 알고 경험한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전제로 생각의 오류와 경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출발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보다.


나는 언제나 옳다는 전제로 시작하면 과정은 갈등을 낳고 그 결과는 대체로 불행했습니다. 물론 '파워'가 개입되면 옳다 그르다의 판단 기준이 없습니다. 강한 사람이 옳은 것이니.

"약자와 강자 사이에는 자유가 억압이고, 법이 해방이다."    - 루소, 사회계약론 중에서 -


그러나 '파워'가 모든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닙니다. 역사를 살펴봐도 모든 권력은 소멸했고 다른 권력이 대체했습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나는 옳고 틀릴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갇히면 세상사 모든 일이 내가 옳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모든 원인을 '나'를 제외하고 찾습니다. 찾다 찾다 찾지 못하니 무엇이라도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정답만 매번 맞혀서 올 A+를 받는 것은 대학에서 가능한 것이지 졸업하는 순간 올 A+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학에서도 받지 못했는데. ㅠㅠ)


나는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다 듣고 그다음에 힘껏 우겨도 됩니다. 


우기는 것도 타이밍입니다. 그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도 '틀릴 가능성'에 관대해져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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