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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Jan 15. 2020

출산과 육아는 사회적 노동이다.

아빠 육아 #08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국가이다. 다양한 사회문제 가운데 후순위로 밀려있지만 저출산 이슈는 개인과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것이고 국가 정책 어젠다의 최우선 순위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쉽게 말해 사람이 태어나지 않으면 국가는 망한다. 나라 잃은 백성이 가지는 비참함을 우리 민족은 이미 겪었다.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울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의 초래는 사실상 개인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지게 할 것이다. 


딸이 태어나고 출산휴가를 받은 7일 동안을 제외하고 24시간을 함께 보낸 적은 많지 않다. 주말의 경우 이런저런 약속과 일들이 생겨서 온전히 시간을 보냈다고 하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에 육아를 중심으로 24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2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내린 결론은 '육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또 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말이 정확하다.  


스테파노 스카페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고용노동사회국장은 작년 '2019 국제 인구 콘퍼런스'에서 "향후 20년간 한국의 15~74세 노동인구는 약 250만 명 감소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히며 유연근무제와 육아휴직 활성화, 아동수당 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는 진단을 하고 적극적인 정책 반영을 주장했다. 또한 한국사회는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회원국 가운데 높은 국가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서 변화가 불가피한 영역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006년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19년까지 총 152조 2000억 원을 출산 장려책에 투입했다. 하지만 저출산 및 고령화 정책의 결과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19년 0.98명으로 하락했다. 지금까지 시행했던 정책적 방법론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의 출산 기피 현상으로 진단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 혼자 사는 삶, 욜로 등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트렌드로 바라봐도 결과는 동일하다. 출산은 여성이 가진 고유한 생물학적 역할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해 초래된 사회적 인식은 '출산 및 육아는 여성의 책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유교적이고 남성 중심의 마초적 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고착화되었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공직에서 정책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출산 장려정책이라는 약간 골 때리는 단어도 탄생했다. 출산을 장려한다는 정책 방향 자체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개인이 짊어진 출산과 육아는 사회적 노동이다.


사회적 노동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정책을 재점검하지 않으면 대안은 없다. 국가경제 체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 계획은 사람보다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사람 친화적이지 않은 도시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가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길이 도시에는 많지 않다. 한국 전쟁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는 세대 간 인식의 거리를 더욱 넓혀놨다. 1980년과 2020년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진심으로 완벽하게 다른 세상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금 20~30대 아기 엄마들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다급했던 시대에서 치열하게 인생을 보낸 분들에게 이마저도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일하면 임금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출산과 육아를 사회적 노동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진다면 국가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개인과 가정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아이 낳고 기르는데 무슨 임금을 줘야 하느냐라는 반론이 있겠지만 이제 한국사회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와있다. 직장 동료 A 씨는 방학 동안 초등학고 6학년 딸을 혼자 둘 수 없어서 출근해서 퇴근하는 시간까지 스케줄을 짜서 돌렸다. 중간에 끼니와 간식까지 챙기니 한 달에 정확히 25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실수령액 250만 원이면 한국사회 임금소득분위 50% 내외에 위치하는데 한 달 벌어서 딸이 보낼 수 있는 일상을 만들어주면 노동의 효용은 끝이란 것이다. 


기본소득제를 적용하는 첫 번째 대상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성이라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스위스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변화를 시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노년, 아동(유아)에 대한 수당 지급은 일정 부분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그 논의를 확대해서 수당이 아닌 임금의 개념을 도입하고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은 어떨까?


쉽게 접근하자. 돌봄과 교육의 실패로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될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논의는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이쯤 돼서 허경영이 떠오르면 이상하겠지만 그분이 말했던 어이없는 공약이 어쩌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갔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 허경영 후보자의 공약사항, 채널A 방송 모습>


공동체가 와해된 사회 속에서 고립된 개인이 육아를 온전히 감당하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아이엄마는 육아로 보내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 떨어져 가는 기저귀,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최소한의 장난감, 쑥쑥 크는 아이가 입을 내복, 단계별 분유와 이유식 재료 등 매일 주문하지 않으면 일상이 무너진다. 거기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 모든 것에 2배의 시간과 노동이 들어간다. 이게 오늘도 한국에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살아가는 삶이다. 지금까지 시행했던 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하자. 그래야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책은 선택할 수 있으니.



"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g and expecting dirrerent results.


-알버트 아인슈타인(Alaber Einstein)-



*사진출처

- 저출산 고령화 사회위원회, 한국일보 기사 재인용


* 참고자료

- 대한민국 정부(2015),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

- 국회 예산정책처(2018),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과 경제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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