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파즈 Jan 18. 2020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여자

아빠 육아 #09

1990년 초여름 태권도 체육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던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는 그때, 저는 7살이었습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가르치던 사범님이 몇 초간 저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늘 활기찬 웃음과 구령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공간이 약간 분주하게 움직였고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도복을 벗고 태권도 승합차 그레이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차에서 내려 다시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입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한 동안의 시간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느낄 수 있지만 바람을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이 바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좁은 방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어머니는 저는 유치원에, 갓 100일이 지난 동생은 어린이집에 종일반으로 맡겨놓고 일을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밥벌이가 최우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키워내야 했고 저희는 그것의 무게를 알리 없는 세상 말 안 듣는 녀석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때까지 하교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성장했지만 제 마음 어딘가에서는 사랑과 관심을 지독하게 갈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채워질 수 없는 욕구였고 저는 착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감정과 욕구를 숨겼습니다. 생계를 책임지고 계신 어머니는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없었습니다. 숨겨둔 감정이 불쑥 드러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여자들을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여자는 뭐하는 사람이냐?'
'일도 안 하고 커피나 마시면 얼마나 좋겠나?'


차갑고 냉소적인 비꼬임이 가득한 말이었습니다. 나를 낳아준 여자는 고생하며 두 아들을 건사하기 위해 오늘도 일하고 있는데, 대낮에 편안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공간에서 커피 마시는 여자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무시였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뒤틀려있던 꿈틀대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사랑과 관심을 갈구할 때 충족해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지독한 서운함과 우리 어머니는 고생하고 있는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년배 여성에 대한 일방적 분노가 중첩된 감정인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최근에 독박 육아를 하고 있던 아내와 24시간의 일상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던 그 여자가 바로 제 아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임신 10개월, 태어나서 어린이집을 보내기까지 최소 18개월에서 24개월. 그렇게 3여 년을 꼬박 생명을 기다리고 양육하고 나서야 대낮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었습니다. 경력은 단절되고 다시 세상에 나가기 위해 이력서뿐만 아니라 멘탈도 다잡아야 겨우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있던 여자들을 무시하곤 했는데 호강에 겨워 산다고. 참,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는 소리였는지.. 정말 반성하게 된다. 도대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 안다고 내 안의 상처로 그런 차가운 말을 내뱉는지.'





[사진출처 : 인스타그램 카페폼, '1인 연 353잔 마시는 커피, 찌꺼기로 테이블, 선글라스 만드다.(중앙일보 2019.11.10.) 기사 재인용]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과 육아는 사회적 노동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