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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Jan 24. 2020

'82년생 김지영', 정말 페미니즘 영화인가요?

아빠 육아 #10 

어제 오후 예전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와 통화를 했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통화하는데 아내가 임신 3개월에 접어들었는데 회사 휴직하고 집에 있는데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임신으로 인한 행복만큼 자신을 잃어가고 있음에 깊은 우울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동료는 걱정이 깊이 스며든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장모님이 계신 곳으로 이사를 고민하고 있어요. 
일은 계속해야 하지만.. 퇴사하고 이직하던지.

그리고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알고 시작하는 게 어디 있겠냐고 다 모르고 있다가 닥치면 하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지만 뭐.. 위로가 될 리 만무합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포스터 상단에 카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


영화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카피 한 줄이 영화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꿈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살아가는 하루


지영 씨의 과거는 가부장적 말과 태도가 일상으로 굳어진 가정에서 그것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며 또 일정 부분 거부하며 성장했음을 알려줍니다. 언니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나름의 반항을 하며 결혼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가족을 위해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교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는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입니다. 꿈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허우적대며 하루를 살아내는 고통과 무게를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지영 씨의 현재는 독박 육아 중입니다. 아내, 엄마, 딸, 며느리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꿈꾸며 자신의 의미를 찾고자 하고 예전 회사 상사가 창업한 '봄바람'에 입사하는 찰나에 병을 알고 치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좌절합니다.


지영 씨의 미래는 모릅니다. 지금도 지영 씨가 서울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육아를 하고 있을 것이고 공유처럼 생겼을지 알 수 없지만 좋은 사람인 남편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아서.


페미니즘 말고 휴머니즘으로 보면 어떨까요?


역사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성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긴 시간 고통받았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이 20세기 근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진보로 힘겹게 얻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로 바라보고 남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남성을 위해서도 여성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고통받는 여성을 항변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전반을 페미니즘 프레임으로 살펴보면 속이 터집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여성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설명 불가입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억압받은 현대 여성의 이야기이자 우리네 이야기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제 친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나를 돌보며 살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아도 된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지영 씨의 어머니가 공부를 잘했으나 동생들을 위해서 미싱 공장에 가서 일하며 학비를 대고 청춘을 보냈지만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지영 씨 어머니가 미싱 공장에서 다친 손을 지영 씨 할머니가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야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은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설 때 이렇게 느꼈으면 한다고 인터뷰했습니다.


그래, 괜찮아질 거야. 좀 나아질 거야.


당신과 나의 이야기도 꿈과 현실 그 어디쯤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겠지만 괜찮아질거고 조금 더 나아질 것입니다.





[사진출처 : https://www.hankyung.com/entertainment/article/201909236696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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