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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07. 2020

소크라테스는 왜 자기 변론을 포기했을까?

에세이 #30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를 대표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이 그토록 힘을 갖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쉽고 안락한 길을 포기하고 어렵고 좁은 길을 선택하였기에 그의 말과 글, 삶의 궤적은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조국 아테네에 불이익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재판에 넘겨집니다.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

 

'고향을 떠나라.'


소크라테스는 단숨에 거절하고 재판을 받기로 결정합니다. 재판은 정해진 결론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였습니다. 한평생 공부하고 가르치며 수많은 사람을 상대했던  철학자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원래 지내왔던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의 동료 헤르모게네스는 큰 동요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소크라테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느냐?'


소크라테스가 답합니다.


'나를 변호하기 위해 평생을 준비해 왔다.'


배심원단은 참여 희망자 약 6,000명 가운데 501명으로 정해졌습니다. 당시 재판장은 야외였고 배심원단 501명과 청중이 더해져 토크콘서트와 비슷한 열기를 내뿜었습니다. 이보다 흥미진진한 쇼가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정치적 이슈와 극명한 갈등, 스토리까지 더해져 엄청난 뉴스였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재판을 이기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기보다 차분히 변론을 합니다. 오로지 주장과 근거, 합리성에 의지해서. 정치적 타협과 협상은 고사하고 더 살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중단하고 모든 상황을 수용합니다. 죽음을 선택한 것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저 같은 범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방팔방에 이야기하고 다니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복수심에 불타서 절대로 이렇게 죽지 않겠다고 끝까지 저항하고 싸울 겁니다. 뭐 그 선택도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왜 자기 변론을 포기했을까? 그 답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솔직히 그 어른이 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자네를 자라게 해 준 우리들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게. 저세상에 가서 자네가 보고 들었던 모든 사실을 그곳에 있는 통치자들에게 떳떳이 변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네. 자네의 목숨, 자식, 그 밖의 어떤 것도 정의보다 앞서는 것이 될 수 없네. 정의를 가장 먼저 존중하지 않는다면 자네는 자신에게는 물론 친척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가장 훌륭하고 가장 옳고 가장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걸세.


지금 자네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은 우리 국법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들이 누명을 씌웠기 때문에 떠나는 걸세. 그러나 자네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정에 대한 앙갚음을 하고, 자네가 이제까지 동의하고 약속했던 것을 어기고, 자네의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나라와 법률을 어지럽히고 떠난다면, 우리들의 노여움을 살 것이며 저세상에서도 그곳의 법률이 자네를 맞아들일 때 기뻐하지 않을 걸세. 그들 역시 자네가 우리의 뜻을 거역했음을 알고 있으니까 말일세. 우리가 아닌 크리톤의 설득에 휩쓸려 그 뜻을 따라서는 안 되네.'


- 소크라테스의 변명 226쪽 「크리톤」 중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은 평생 동안 자신을 직면하며 추구한 철학을 지키고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설득할 것인가? 배심원을 설득할 것인가?'


내면의 목소리, 내 안에서 나와 대화하고 있는 자의식은 무엇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나의 의지로 삼고 그렇게 행동하는 삶은 무엇인가? 내가 부여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과의 문답 끝에 정의로운 개인과 사회가 가장 훌륭하고 옳다는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동시에 누명을 쓰고 억울한 상황에도 불법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복수하는 치졸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때 의미가 있다고 가족, 친구, 제자에게 가르쳤던 자신을 지킨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부여했던 의미를 스스로 지킴으로 그것이 결코 틀리지 않은 가치임을 밝히고 삶을 끝내겠다는 높은 수준의 마음입니다.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겠다. 어떤 상황에도.'


내가 뱉은 말을 지키며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가 아니더라도 아테나가 정한 법률에 따라 받아들이겠다. 설령 그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도.


정치적 정적들의 이름은 역사책 구석에 2,500년 동안 남았습니다. 명예롭지 않게. 그들이 누렸을 권력은 한 줄로 나와있습니다. '혼돈의 시대였다.'


혼돈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일흔 살의 철학자는 삶을 정리하며 매우 분주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자기 자신에 묻고 스스로 답을 찾고 그것을 변증 하기 위해 말과 글을 가다듬으며.


인생은 고통스럽습니다.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버거운 날도 있고 기나긴 인내 끝에 성취한 열매는 한 달만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됩니다. 24평에 살다가 33평으로 옮기면 한 달 기쁩니다. 딱 한 달. 중고차를 타다가 새 차로 바꿔도 한 달 기쁩니다. 딱 한 달.


지금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지루하고 심심하며 때론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며 기쁨과 환희의 짧은 쾌락에 내 몸과 마음, 영혼을 던질 것인지. 아니면, 자기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울림 있는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살 것인지.  


무례함을 겪는 상황에도 인생이 가진 아름다운 의미를 잃지 않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찾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여 비록 내가 그런 대우를 받았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타인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존중하며 친절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비결임을 소크라테스는 당부합니다.





그다음에 여러 가지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며 지식의 아름다움을 찾고 그 아름다움을 깨달아 한 가지에만 집착하거나 얽매이는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며 한 가지 일에만 만족하여 구차하고 비열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히려 아름다움이라는 큰 바다로 나아가 그 바다를 바라보면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관념과 사상을 창조해 아름다움에 관한 인식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 말에 주의해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 308쪽 「향연」 중에서



[사진출처 : https://debatingday.com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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