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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16. 2020

감정을 옆사람에게 버리지 말자.

에세이 #33

사람을 만나고 들어온 날 편하게 잠드나요?


만나고 헤어지면 개운한 사람이 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6년이 된 A는 딱 그런 사람이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대화한다. 나와 다르게. 


새해 첫날 A에게 전화를 걸어 올해는 꼭 산에 한 번 다녀오자고 인사했다. A와 그런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데 혹시 A가 억지로 오케이 했다면 나 혼자 서운한데..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그만큼 A는 담백하고 무엇보다 만나면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자주 만났던 B와는 헤어져 집에 오면 기진맥진해서 맥주 한 캔을 먹지 않고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억지로 끌려간 곳에서 운동장을 100바퀴 이상 돌고 온 느낌처럼. 


최근에 깨달은 것인데 B는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즐거운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많지 않다.


가족 관계, 결혼, 회사 상사 등 매번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 중이다. B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 혼자.


알고 지내는 C부부는 SNS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C부부는 만나면 함께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한 번은 아이가 옆에 있는 친구를 무작정 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불고 생떼를 써서 남편이 훈육을 하며 강하게 다그쳤다. 


그런데 전후 상황을 보지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묻지 않고 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지 말라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심하게 핀잔을 줬다. (나는 살짝 남편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SNS에 '좋아요'를 누르기 힘들었다. 나 자신을 속이는 느낌이라.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 번 말을 시작하면 이야기를 하느라 앞에 있는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세상 온갖 짐은 내가 다 지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나의 힘듦을 온 세상이 알아야 하는 것처럼 떠들고 다녔다. 바늘에 찔려 피 한 방울 흘렸다고 하더라도 당장 수혈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말했던 적도 많았다. 


오로지 감정적 지지를 받고 싶어서.


무엇보다 불편하고 해소할 길 없는 감정을 옆사람 동의 없이 막 버려놓고 집에 가서 두 발 뻗고 잘 잤다. 아마 아내에게 가장 많이 그러지 않았을까? (ㅠㅠ;;)


무엇을 주고받는지가 관계의 깊이와 넓이를 결정한다.


만나고 나서 남는 것이 스트레스와 숙취뿐이라면 어서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주고받은 관계면 돈이 오가지 않으면 끝난다.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주고받았다면 그리고 진심이었다면 꽤 길게 가지 않을까?


그런데 일방적으로 감정을 버리는 용도로 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면.. '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나조차 그렇게 이용하지 않았는가 사람을.


요즘은 어렵고 힘들면 무턱대고 사람을 찾지 않는다. 사람을 쓰레기통 취급할까 봐. 정중히 대화를 요청한다 아내에게. 온갖 모자란 모습을 다 본 이에게.


그렇게 사람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한 번 줄인다. 





[사진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043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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