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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23. 2020

'한 순간이다. 다 지나간다.'

에세이 #34

고등학교 친구 C는 '이것도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라고 자주 말했는데 이 말을 하는 상황은 대체로 사고를 치고 선생님께 혼나거나 맞을 때였습니다.


한 번은 둘 다 농구를 좋아했는데 1:1 게임을 하다가 불이 붙었습니다. 승부욕이 넘치던 17세, 다음 수업에 늦더라도 결판을 내자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농구하느라 수업을 땡땡이를 친 겁니다.


저와 C는 담당 선생님께 빠따를 맞고 담임 선생님께 호출당했습니다. 그때 교무실로 걸어가며 C가 웃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야, 혼나는 것도 한순간이다. 다 지나간다. 그런데 마치고 농구는 다시 해야 한다.'


속으로 뭐 이런 미친 X이 다 있나 했지만 워낙 해맑게 웃으며 말하고 있어 침을 뱉을 수 없었습니다. 둘은 그날 줄빠따를 맞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 반성문을 제출하고 하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둘은 그 길로 농구를 하러 갔습니다. 누가 이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둘 다 열심히 했고 서로 이겼다고 우긴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이긴 것으로 거의 확신합니다.)


그러고 20여 년이 지났고 오늘 문득 C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한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고 지금 이 글을 쓰며 확인하니 추가로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곧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상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바이러스는 소멸됩니다. 메르스 때도 그랬고 사스 때도 그랬던 것처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남긴 체.


지나간다. 다 지나갈 텐데, 이것이 지나가고 무엇이 남을지..


한국사회는 선긋기, 배제, 혐오, 분노,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엄청나게 축적되고 있습니다. 또한 당장 이 거대한 감정이 분출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음도 분명합니다.


부디,

코로나바이러스-19가 한국사회에 정서적 바이러스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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