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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25. 2020

질병관리본부의 정례 브리핑

시사 #08

가볍게 무엇을 쓰려니 하루 종일 보았던 뉴스가 머리에서 맴돕니다. 나도 모르게 불안과 공포에 잠식된 느낌입니다. 메모장을 넘기고 생각을 전환하며 가볍게라도 써보자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쓰자라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애써보지만 또 혼돈으로.


그러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정례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안경 너머 보이는 피곤한 눈과 수척한 얼굴이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분은 차분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머리를 넘기고 안경을 고쳐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제스처도 없었습니다. 


재미는 고사하고 웃음끼 하나 없이 오늘 질병관리본부가 한 일과 경과를 차근차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브리핑에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들리는 건조한 스피치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분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대략 5,000~6,000건의 검사를 매일 진행하고 있고 24시간 이내 검사 완료를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 10,000건을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뛰고 있는데 쉽게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고 격무에 시달리며 사투를 벌이는 분들이구나.. 싶었습니다. 모두 발언이 끝나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들 질문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메모하면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본부장의 말 한마디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조곤조곤 설명했습니다.


브리핑을 보며 이 분의 목소리와 태도가 내용만큼 신뢰감을 줬습니다. 분야에 대한 전문성, 상항과 대비되는 침착한 어조, 일목요연한 논리, 군더더기 없는 말, 눈을 마주치고 받아 적는 경청. 


이 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을까?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종종 듣는데 유시민 이사장은 당시 정은경 과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징계를 받고 감봉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에서 일할 때 굉장히 꼼꼼하고 일일이 메모하고 느릿느릿하게 말하고.'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019년 말에 메르스 사태를 복기하며 중국으로부터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확산되는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대응방안을 운영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그때는 코로나의 코자도 들리지 않던 때였습니다. 


다시 느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자리는 그저 사람을 보여줄 뿐이란 것을. 


오늘도 고단한 하루 속에서 바이러스와 그야말로 전쟁을 벌이는 모든 분들에게 잠시라도 좋은 단잠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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