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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27. 2020

누전 차단기가 마음을 태웠다.

에세이 #35

이사한 지 3개월.


주방에서 가전용품을 사용하면 배선용 누전 차단기가 '툭' 소리를 내고 떨어졌습니다. 커피머신, 토스트기, 전기포트, 정수기.. 무엇을 사용하든 툭 툭 떨어지더니 급기야 냉장고마저 툭.


전기포트를 쓸 때는 세탁기를 돌리지 못하고 전자레인지, 오븐기 사용은 꿈도 못 꾸는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LG전자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냉장고 자체에 결함이 없는지 A/S를 요청했습니다. 기사님이 점검을 마치고 하시는 말이


'냉장고는 이상 없습니다.'
'이런 경우 차단기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살펴보세요.'


그 말을 듣고 '괜히 이사했나?', '제대로 온 게 맞나?', '앞으로 어떻게 하지..?'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드리니 기사님이 오셔서 쓰윽 보고 하시는 말이


'전기포트가 용량이 큽니다.'
'전기포트를 교체해서 다른 것으로 사용해보세요.
'다른 곳은 이상이 없습니다.'


전기포트가 문제라고? 그럼 아파트가 전기포트 용량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오는 것을 참았습니다. 


담당 기사님이 내일 오시면 한 번 더 방문해서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하니 답답해도 뭐라 할 말도 없고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돌아가던 세탁기를 멈추고 냉장고만 살려둔 체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멀티탭 2개를 연결해서 작은 방 콘센트와 세탁기를 연결해서 빨래를 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전기 담당 기사님이 집을 둘러보며 하나하나 체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차단기 안에 전선을 봐야겠다며 드릴로 풀어서 열어보니 주방 쪽 전선이 타서 새까맣게 변해있었습니다. 


차단기가 노후돼서 선이 탔습니다.
차단기를 교체해야 합니다. 


주방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아내가 몇 번 말을 했고 LG전자 A/S기사님은 차단기 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정작 차단기 한 번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곳만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차단기 전선이 탔고 제 마음도 타고 있던 모양입니다. 별 일 아니고 차분히 찾아보면 되는데 초조함과 짜증이 겹치니 마음만 급했습니다. 문과 출신으로 기계는 고사하고 스위치만 켤 줄 아는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며 차단기를 보니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보며 비웃는 느낌마저 드니..(ㅋㅋㅋ) 조금 억울할 수 있는 전기 포트는 아침마다 따뜻한 커피를 위해 열일 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핑계 대겠습니까? 조급함에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모르며 열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해결될 리 만무했을 것이고.


일하며 후배에게 차분하게 가자고 말해던 적이 몇 번인지 손을 헤아릴 수 없는데 주방 전기가 나가자마자 차분함을 잃었습니다. 어휴. 멀었습니다. 너무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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