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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28. 2020

아.. 죄송합니다. 이 따위 질문을 드려서.

에세이 #36

법원 행정처를 사직하며 사법 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판사를 인터뷰하며 손석희 앵커가 했던 말입니다.


이탄희 판사는 법원을 사직하고 언론 인터뷰를 꾸준히 고사했습니다. 사법 농단은 구조적 문제인데 개인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그에게 손석희 앵커는 질문을 합니다.


그럼 이 질문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는데 개인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제정한 올해 의인상은 또 받으러 가셨더라고요.


이탄희 판사가 답합니다.


사실은 그 행사에 언론이 온다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은 못했고요. 그런데 다만 거기 간 이유는 있습니다. 저도 사실 망설이기는 했어요. 제가 거기 가는 것이 어떻게 비칠까. 거기 있는 분들한테. 그런데 제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제가 아파트 살다 보니까 단지 내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가끔 사요. 나눠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그 모습 보면 좋은데. 하루는 아이스크림 사 왔는데 애가 너무 표정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러냐 했더니 아빠가 없어진 줄 알았다. 어디 잡혀간 것처럼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이것을 잘 극복해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때 겪었던 일에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좀 시상식 가서 아빠 상 받는 모습도 보여주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 시상식에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손석희 앵커가 말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 따위 질문을 드려서.


손석희 앵커가 이 사실을 알고 물었을 리 없습니다. 앵커 입장에서 이탄희 판사가 했던 말과 다른 행동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려 했으니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탄희 판사는 가장 개인적인 이유를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손석희 앵커는 한 마디를 더 남깁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배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치는 손석희 앵커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품격 있는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이 적절치 않음을 아는 사람과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만나 공개된 장소에서 있는 그대로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을 묻는 행위는 생각을 끄집어내어 말로 공간을 채우는 독특한 것입니다. 의도가 담긴 질문은 사람을 난처하게도 또는 더 띄워주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말은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은 말하며 자신을 정리합니다. 


온갖 말이 난무해서 말의 가치가 바닥을 치는 때에 이 인터뷰가 생각나 15분을 차분히 들었습니다. 


말은 격이 있는데 사람이 그 격을 너무 낮춰놓은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인격이 언격은 아닌지.


참된 말을 듣고 또 참된 말을 하는 사람. 공허한 약속을 말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남루한 마음을 숨기는 말로 채운 하루가 찝찝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문득 이 정도 쓰고 스스로 했던 최악의 질문은 뭐가 있을까 돌아봤습니다.


1. 나중에 커서 뭐 되고 싶어? 

이제 성장하는 친구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묻긴 왜 물었는지. 오늘 잘 놀았어?라고 물으면 딱인데.


2. 언제 결혼할 거야?

생물학적 나이의 많고 적음이 행복한 결혼을 담보하지 않는데 결혼은 알아서 둘이 할 텐데. 오지랖으로 얼굴만 붉혔습니다.


3. 어디서 일해?

밑도 끝도 없는 건방짐이 극에 달해서 던진 질문인 듯한데.. 다시는 안 합니다.


4. 아버지 뭐하시노?

라고 물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이 거의 최악이지 않을까 싶어서.



이쯤 되니 마치 반성문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더 쓰면 더 비루한 제 모습이 드러날까 싶어 이쯤에서 서둘러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무엇을 묻고 무엇을 답하셨나요? 


...



[사진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zPly6nLJL-U&t=776s 캡처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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