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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Jun 17. 2020

책을 고르는 취향

에세이 #54


1. 목차를 읽고 궁금한가?


 책을 쓰는 사람은 제목과 목차를 결정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합니다. 목차는 책의 뼈대로 일관된 메시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가이드를 따라서 궁금증이 생기는 목차를 살펴봅니다. 만약에 없다면 바로 내려놓습니다. 목차에 언급된 단어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목차에 궁금증이 들지 않으면 패스!


 목차의 한 단락이 궁금하다면 그 페이지를 펴서 읽어봅니다. 딱 3분만! 그리고 책을 곁에 둘 것인지 내려놓을지 선택하면 됩니다. 출간 도서는 저자의 초고에 많은 시간을 들여 매만져 균질한 문장으로 정돈합니다. 3분 읽기 힘든 책을 30분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과감히 내려놓으면 됩니다.


<신호와 소음 (네이트 실버)> 1장 세 번째 단락 '야구 경기는 왜 모든 예측의 모델이 되는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차근히 읽었는데 그 자리에서 40~50페이지를 쭉 읽었습니다. 재미있고 콘텐츠는 풍부했습니다. 지금도 인상적인 단락은 체크해놓고 읽습니다. 신호와 소음에 나온 짧은 내용입니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제목도 너무 좋습니다!>


 MLB 베테랑 스카우터 '존 샌더스'는 스카우터들이 선수를 평가하기 위해 이용하는 5-Tools (타격 파워, 타격 정확도, 주루 스피드, 송구 능력, 수비 범위)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빨리 달리고, 세게 던지고, 이게 전부다. 경기장에서 이런 것들을 즉각적으로 불 수 있죠. 난 선수의 기량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이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샌더스는 정신적 도구 상자(mental toolbox)를 말합니다.


준비성과 노동윤리 (일찍 야구장에 오는가?)

집중과 초점 (투구에 집중하는가?)

경쟁심과 자신감 (자신을 믿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각오가 있는가?)

스트레스 관리와 겸손 (짧은 기억과 유머 감각이 있는가?)

적응력과 학습능력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온 선수라면 실력은 검증이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 끗 차이를 만드는지 샌더스는 주목했습니다. 매일 경기를 치러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실한지. 반복하는 훈련이라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지. 자기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지. 슬럼프와 실수를 웃으며 넘길 수 있는지. 트레이드, 방출, 포지션 변경 등 변화가 잦은 리그에서 빠르게 적응하는지.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익힐 필요가 있는 도구입니다. 정신적 도구 상자를 업무 수첩 첫 면에 손글씨로 적어놓고 매일 읽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일찍 출근했는지. 업무에 집중하는지. 부족함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성공을 꿈꾸고 있는지. 자주 웃는지. 업무와 팀이 변경될 때도 적응하고 배우려고 애쓰는지.


 책에서 삶을 배우고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런 책을 어찌 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 카피에 울림이 있는가?  


 도서 마케팅은 '표지 디자인'과 '카피'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독자들은 표지를 중시합니다. 책은 읽는 것이자 들고 다니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는 상징을 내포합니다.


 최근에 집으로 친구 부부를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적 허영심이 많은 편입니다. 초대를 앞두고 음식 대접이나 집 청소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읽고 있던 혹은 읽었던 책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배치해둘까?를 고심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배치하려 했는데,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실패한 듯) 그렇게 무심한 듯 올려놓았던 책 중 하나가 최근에 3번째 정독하고 있는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입니다.

 인생의 힘든 순간을 겨우 지나오면서 내가 터득한 비결 하나는 시간 단위를 아주 짧게 끊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면 우선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된다면 1시간만 생각한다.

 1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라면 10분, 5분, 1분만 생각한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지금 눈 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용기만 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아주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다.

-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에서 -


 인생이 고통이 찾아올 때 어떻게 견뎌야하는지 담담한 어조로 말합니다. 저자는 딸이 지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가족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대처했는지 상세히 알려줍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딸을 지켜보는 아비의 마음이 느껴졌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가족들의 사랑이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한 문장을 쿨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집중합니다. 혼란과 갈등이 빈번한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론이 아니란 두 발을 땅에 내딛고 사는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밑줄을 긋다 긋다 옮겨 적은 구절이 많습니다.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울림 포인트가 많은 책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깊이 있는 인사이트로 가득한 책입니다.>



3. 이야기가 있는가?


 '책을 왜 읽는가?' 라는 질문에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말하기 위함' 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다양합니다. 물론 '나는 이런 책도 읽는다.'라고 은근히 밝히는 격조 높은 자랑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을 매개체로 활용하면 한결 대화가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책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침묵의 순간을 부드럽게 말로 채워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면 그것 자체가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물론 지나친 자랑은 금물입니다. 재수 없는 인간으로 찍힐 수 있으니) 내뱉은 말의 신뢰도는 결국 명확한 근거와 행동입니다. 그렇게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은 분명히 좋은 책입니다.


 호모 스토리쿠스(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는 현대사회에서 진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이야기와 콘텐츠를 접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눈높이는 더 높아지는 중입니다. 그런 욕망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콘텐츠는 책입니다. 물론 책도 넘쳐납니다. 책 자체가 가지는 이야기가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책 속에 한 단락을 읽었을 때 나온 예화가 재미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픽션, 논픽션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옳습니다.


 단 하나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독자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뜨겁게 한다면 그 책은 가치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책은 반드시 선택해서 읽어봐야 합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에 나온 예화를 소개합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한 이야기에 선택한 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저자가 작성한 연설문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통령 인수위가 끝나면 저자는 그만둬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은 온 나라가 대통령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그때 저자는 당일 오찬과 만찬에 사용할 말씀자료를 작성했습니다. 모두가 취임 연설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으니.


 취임식 다음 날, 대통령은 비서실을 돌며 저자를 찾았습니다. 저자가 쭈뼛거리며 나서 인사를 하자 대통령이 한 마디 했습니다.


'나는 미처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글이 좋았어.'


 취임식 당일 오찬과 만찬에는 국내 고위 인사뿐만 아니라 해외 정상급 VIP들이 참석하는 가볍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 말은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자료가 좋았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저자는 청와대를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있을 수 있었고 마음에 남아있던 큰 짐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글쓰기' 책에 나온 예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에게 외면받는 글을 쓰고 있는 연설비서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애타고 초조했을까요? 초조하면 글이 써지지도 않을 텐데, 어쨌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을 저자의 마음과 그 주변 환경을 이따금 상상해봅니다. 얼마나 절박했을지 헤아리기 힘듭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이야기는 매번 읽을 때마다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목차를 읽고 궁금증이 들거나, 길든 짧든 글에 울림이 있거나, 한 편의 이야기라도 재미가 있다면 주저 말고 선택해서 읽어보시기 추천합니다. 어디까지나 책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매번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네 삶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약간 별로인 책을 만나면 '헐~' 한마디 하고 넘기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더 좋은 책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다 취향에 딱 맞는 책을 만나면 열심히 읽는 겁니다.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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