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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Sep 12. 2020

곰돌이는 왜 엄마 젖을 가져갔을까?

아빠 육아 #20

 단유를 시작하며 아내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미의 젖은 자라나는 아이에게 대체 불가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유 전부터 아내는 끊임없이 설명했습니다. 배고픈 곰돌이에게 젖을 준다고.


'곰돌이는 왜 엄마 젖을 가져갔을까?'


 2020. 9. 2. 단유가 시작되었습니다. 첫날은 모유를 먹으며 잠이 드는 습관 덕분에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녘까지 뜬 눈으로 버티며 놀고 울기도 엄청 울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빠는 잠이 들었다는... ㅠㅠ;;) 


'엄마 젖을 물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셋째 날 오전부터 곰돌이가 젖을 가져갔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밥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먹지 않으면 배고프니깐. 엄마 젖을 물기 위해서 아내의 상의를 들추는 행동도 줄었고, 아내가 누워있으면 의례상 모유를 먹으려고 같이 누웠던 일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날부터는 새벽에 중간중간 깨어 물을 찾는 일도 줄어들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상실'을 감내하며 적응하고 있는 녀석이 일면 대견하기도 합니다.


 아내는 단유를 앞두고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외출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계속 우는 아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새벽 내내 자지 않고 울면 어떻게 하나? 남편이 수면이 부족해서 일하는데 지장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젖몸살에 몸이 지치면 육아는 어떻게 하지? 


 아내는 사전에 모든 고민을 하고 막상 일이 닥치면 의연합니다. 아, 물론 정확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여전히 아직도 그녀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 아마, 그런 고민을 하며 경우의 수를 따져봤을 겁니다. 그리고 나름의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대응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이 무색할 만큼 딸은 금세 적응하고 자기 살 길을 찾았습니다. 예상보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용감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밥을 더 많이 먹었습니다. 밤 8시경에 저와 함께 목욕을 하는데 최근에 상의를 벗으면 배가 볼~록~합니다. 많이 먹어서. 그렇게 스스로 서는 것이겠지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독립'


 아이는 이미 준비가 되었는데, 부모의 염려와 걱정이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막아서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딸이 태어나고 16개월이 지난 즈음, 아내와 딸은 큰 산을 넘었습니다. 서로가 더 많이 사랑하지만 한 발 물러서는 연습입니다. 딸이 두 발로 든든히 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한 신발의 첫 끈을 동여맨 느낌입니다. 


 그러다 불쑥 자라서 엄마와 아빠의 품이 좁아질 것이고 세상 속에서 살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도, 징그러울 만큼 싫은 사람을 만나는 축복도 누릴 것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두 발로 험난한 삶을 헤처 나가다 보면 어느덧 결혼을 하고 자신을 닮은 또 하나의 우주를 만나겠지요.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서야 '엄마'가 어떠했는지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겠지요. 그리고 그때, 곰돌이가 왜 엄마젖을 가져갔는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그전까지는 곰돌이를 꽤 많이 원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요한 토요일 새벽녘입니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는 단비가 내립니다. 그렇게 또 '변화'는 조용히 우리네 삶 속으로 스며듭니다.




* 이 글은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기 형식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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