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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05. 2020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는 아내의 마음

 아빠육아 #21

 아내는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심리 치료의 다양한 경험과 사례를 겪고 나서 결론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2년은 보내야겠어.


 아내는 벌써 19개월째 고생스러운 독박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힘든데 지금까지 딸은 유튜브를 5분 이상 본 적이 없습니다. 딸이 눈을 뜨고 노는 동안 TV는 당연히 보지 않습니다. 아내는 어린 시기부터 자극적인 영상을 보는 것이 아이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꽤 철저하게 지금까지 지켜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몰래 TV를 틀어놓고 본 적이 있는데(^^;;;) 딸은 어김없이 즐겁게 보았는데 흥미로운 것은 TV를 끄자 더 이상 보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와 아내의 핸드폰이 보이면 보려고 애를 쓰기보다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줍니다. 충전하는 핸드폰은 한두 번 건드려보고 말기도 합니다.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으려면 아이와 함께 하루 일과를 온전히 보내야 합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2~3주 전에 제가 온종일 먹이고 재우고 놀고 씻기며 보낸 적이 있습니다. 딱 하루였습니다.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뼈저리게 느낀 한 가지는 '잠자는 아기는 천사다.'라는 사실입니다.


육아는 찐 노동이다.


 코로나 시대에 제한된 공간에서 계속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경험하며 육아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입니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낮잠 시간뿐입니다. 매일 2~3시간씩 자는 것도 아니고 컨디션에 따라서 30분 만에 깨어날 때도 있으니 참 그것도 고역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으며 육아를 이어가고 있는데 최근에 아내는 중대한 발표를 했습니다.


2021년 1월부터 하루에 5분씩 유튜브를 보여주겠다.


 이제 영상을 5분가량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앞으로 어린이집도 가야 하고 그 정도의 즐거움은 필요할 것이라는 마음인지 어쨌든 아내는 이제 영상을 조금, 그러니깐 매우 조금은 봐도 된다는 판단을 했는가 봅니다. 물론 저는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딸은 그다지 TV 시청이나 영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깐 TV를 켜놓고 보더라도 이내 다른 놀이를 찾아서 거실을 떠납니다. 크림을 바르거나 예쁜 옷을 입거나 자동차를 타거나.. 그 어느 것이든 TV 보기보다 재미있는 것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뽀로로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커트하는 동안 뽀로로를 보았는데 빠져들어 보았습니다. 뽀로로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깐요.


 지난 주말 공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딸은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더 놀고 싶다며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 주차장으로 가는 길까지 안고 가면서 뱅글뱅글 돌면서 이동을 했는데..(어지러움에 제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줄 알았습니다..) 그 뒤로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뱅글뱅글 도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뱅글뱅글 돌다가는 제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


 그렇게 뱅글뱅글은 1주일 이상 가지 않고 다른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했습니다. 발견했다기보다 스스로 성장하면서 시시한 놀이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에는 댄스에 푹 빠져있습니다. 음악을 플레이하면 신나게 춤을 춥니다. 푹신푹신한 매트리스 위에서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딸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엄청난 기쁨인데 요즘 들어 부쩍 아빠랑 같이 추겠다고 하니 그건 참 어렵습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트리를 소박하게 장식하고 불빛을 켜놨습니다. 반짝반짝 불빛은 동화책에서 봤던 내용인지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게 한참을 바라보며 혼자 좋아합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딸은 꼭 거실 한 구석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들려서 불빛을 잠시나마 지켜보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헤어질 때는 인사를 합니다. '트리야, 안녕~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만나자!'




 아내는 TV를 보지 않고 영상을 장시간 시청하지 않아도 지구별은 감탄하고 경탄할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딸이 자연스럽게 배웠으면 하는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영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그것을 지키면서 다양한 접근을 하고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고 핸드폰보다 동화책을 더 많이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제 곧 뽀로로를 친구로 받아들이며 보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뽀로로와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뽀로로 친구들의 캐릭터 이름을 빨리 외워야겠지만요.


"신이 인간에게 맡긴 가장 무거운 책임은 자녀다."


 인간은 태어나고 36개월 동안 사람 사이의 신뢰감이 형성되고 감정의 발달 수준이 결정됩니다. 무엇보다 뇌과학적으로 뇌는 이 시기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기능은 강화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기능은 발달하지 않는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뇌의 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버텨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전두엽의 발달 수준은 양육의 질이 결정합니다. 세상에 태어나고 1,000일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남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신이 인간에게 맡긴 가장 무거운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가 부모의 인생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 방송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의사가 했던 한마디가 생각났습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신과 같은 존재다.  


 아내는 딸에게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36개월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겹친 상황에서 제한된 공간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인내하며 긴 호흡으로 딸이 천천히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


 어렵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지금의 시간이 우리 부부와 사랑하는 딸이 살아가야 할 힘겨운 세상에서 넓은 버팀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향적 성향이 강한 엄마는 왕성한 호기심과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딸과의 외출이 녹록지 않지만 다양한 자극과 경험을 주기 위해서 참 많이 애를 씁니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아 꽤 버거운 하루였습니다. 동시에 딸의 전두엽이 조금 더 건강해지는 하루를 쌓았습니다. (^^)




 잠든 딸을 뒤로하고 저와 아내는 거실로 잠깐 나왔는데 그 사이 딸은 잠결에 엄마, 아빠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서운했는지 '엄마, 엄마.'를 부릅니다. 다시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서 딸을 재우기 위해 안전하다는 것을 인지시키며 곁에 누웠습니다. 아내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도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곁에 누워야겠습니다. 진짜 저와 아내의 하루가 끝나기를 바라면서. 품 안의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어느 시점에는 지금과 같은 시간이 참으로 그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모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도 긴 인생에서 보면 찰나의 순간입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딸을 마음껏 사랑하고 올바르게 크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좋은 날,

좋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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