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 #22
2021년은 다사다난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갓난아기였던 딸이 딱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과 한마디 말에 감탄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아빠에게 꽤 잔소리도 하는 딸이 되었습니다.
병원을 가기 위해 딸과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카시트에 딸을 앉히고 운전대를 잡았는데 대뜸 딸이 '아빠, 천천히 가. 빨리 가면 넘어지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안전 운전하라는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저는 '응, 알겠어. 아빠가 천천히 갈게.'라고 답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는 20분 동안 이 대화를 반복했습니다. 분명히 알겠다고 말했는데 똑같은 말을 또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신호가 걸려서 차가 멈춰 서면 왜 안 가냐고 물었습니다. 신호등이 빨간불이라서 갈 수가 없다고 말했지만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안 가냐는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운전을 시작하면 천천히 가라고 하고, 신호에 걸리면 왜 안 가냐고 하는데 진퇴양난도 이런 진퇴양난이 없었습니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조금씩 다르게 할까를 고민하고 이것저것 이유를 생각하며 말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 답변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고 아빠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지난 토요일 밤은 유독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었습니다. 아빠가 게으름을 부린 탓에 목욕 시간이 늦었습니다. 그렇게 늦게 방에 들어와 잠들기 전 늘 읽는 책을 읽어주려 했는데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 : (장난 가득 미소를 머금고) 어젯밤에 아빠가 나는 안 좋아!
아빠 : 응? 아빠가 안 좋아?? (슬픈 척하며) 흑흑. 아빠는 슬퍼.. ㅠㅠ
딸 : (포옹하고 뽀뽀를 하며) 아니야, 나는 아빠 좋아해.
아빠 : 아빠 안아주는 거야? 고마워!
30개월이 갓 지난 딸이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물론 이 대화도 몇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몇 번 뒹굴뒹굴하더니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 깊은 밤 잠든 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렴풋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 저녁 선잠이 들었는데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셔서 제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고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를 깨우면 될 텐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와서 헤아려보니 어머니는 당신 아들 손 한 번 잡아보고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끄러미 제 곁에 고이 잠든 딸의 얼굴을 한 번 봅니다. 그리고 손도 꼭 한 번 잡아봅니다. 일상에 찾아든 조용한 기적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 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하는 첫 번째 남자가 아빠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