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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Oct 10. 2020

그 마음, 내가 안다.

에세이 #59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그것이 있으면 세상을 차지하고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몸을 둘러싸는 피부 밖에 있는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말은 꽤나 근사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입니까?


 청춘을 함께 보낸 사람과 결혼을 하면 행복이 보장될 것처럼 느끼지만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합니다. 결혼한 대다수의 부부는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며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 이른바 합을 맞춰갑니다. 그것도 둘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성숙한 '태도'가 없다면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서로의 마음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주고받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는 말하지 못하는 유아기 자녀의 의중을 읽고자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노력합니다. 배고픈지, 아픈지, 불안한지, 기쁜지.. 그 어떤 마음이든 알아내고자 애를 씁니다. 태중에 10개월을 품고 있던 엄마는 자녀의 모든 것을 신호로 받아들이고 섬세하게 접근합니다. 이에 반해 아빠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관찰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습니다.


 남성은 진화 과정에서 '사냥'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선택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생존과 직결됩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정글의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타이밍을 놓친다면 오늘 밤도 가족은 굶고 공동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믿고 'GO!'를 외치고 사냥에 성공한 남성만이 공동체 구성원의 선망과 지지를 받고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 기본 구조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더 추가된 것은 '공감'입니다. 정점에 서서 조직과 공동체를 이끌던 리더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시대가 전환되는 지점에서 갈등은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그 갈등은 학교, 가정, 회사, 정부 등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마초적 리더십이 도전받는 것이겠지요. 최근 주말에 놀이터에 아이와 함께 놀기 위해 나온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가정에서 따뜻함을 나누려는 남성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생존을 위한 변화


 현대사회에서 조선시대 남성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백이면 백, 가정에서 불화가 발생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변화했는데 본인은 과거에 머물면서 정신적, 신체적, 감정적 수용을 온 가족에서 요구합니다. 그것을 버텨낼 사람은 없습니다. 자식들은 오로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독립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내는 졸혼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참으며 남편을 받아낼 힘도 에너지도 없습니다. '사랑'을 논하기에 삶의 고단함은 생각보다 큽니다.


 경청과 공감은 현재를 살고 있는 남성에게 가장 필요한 영역입니다. 남성의 본질적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처럼 비치지만 가정문화와 분위기는 여전히 아버지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큽니다. 새로운 시대는 남성에게 새로운 덕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가정에서 따뜻함을 먼저 베푸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태에서 어미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그대로 결혼하여 아내에게 요구하던 철부지에서 벗어나 먼저 사랑을 머금고 사랑을 베풀어라는 것입니다.


 따뜻한 아버지와 함께 자란 딸이 장성하여 배우자를 고를 때 무엇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습니까? 자신의 아버지입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줬던 아버지, 자신의 아무 말도 재미있게 들어주던 아버지, 자신이 어려울 때 묵묵히 안아주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선택합니다. 이것은 다음 세대 남성에게 여성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주어진 또 다른 문턱입니다.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처럼 따스한 빛으로 주변을 비춰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나를 향한 빛을 먼저 따스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에 빠져서는 빛을 비출 수 없습니다. 내 삶의 과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은 유지하되 과는 반복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돌볼 수 있습니다. 한 여성을 사랑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다시 그 사랑을 자녀에게 전하는 것이 진짜 섹시한 남성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 마음, 내가 안다.


 '네 마음을 내가 안다.'라고 진심을 담아서 말할 수 있어야 꽤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를 따르라!', '내가 왕이다!'를 외치는 전제 군주 시대의 남성의 모습을 뇌에서 어서 드러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히어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블 영화를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단조로운 일상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발에 땀나는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에너지가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 차분한 한 걸음이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500일이 지나가는 딸은 요즘 한창 예전에 다쳤던 발등에 밴드를 붙이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밴드는 안방에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데 지난 주말 저에게 안방으로 가자고 손짓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열심히 가리키길래 저는 자주 입는 바지, 좋아하는 인형과 장난감을 차례로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니 'No'라고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저는 약간 당황하며 혹시나 해서 밴드를 건네주었더니 박수를 치면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저에게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더니 짧은 팔을 벌려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아빠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두 팔 벌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팔도 짧은 녀석이 아빠를 안아주겠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좋아 제가 더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러니 어서 놓으라고 자기는 밴드를 붙이겠다며 저를 밀어냈습니다. 자기는 받은 만큼 이미 표현했다는 것이겠지요. 주고받는 것이 명확한 녀석입니다.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동시에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첫걸음이 됩니다. 


 오늘 공원에서 꽤 많은 걸음을 딸과 함께 걸었습니다. 완연한 가을 하늘과 맑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습니다. 꽤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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