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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Oct 26. 2020

어이, 도우미. 제대로 안내를 하세요.

에세이 #60

 최근에 수도권에 높은 경쟁률을 보인 신축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방문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서 방역 절차에 따라서 입장을 했습니다. 저에게 그다지 유쾌한 방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그런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절한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저를 다른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사소한 실수였습니다. 그리 큰 일도 아니고 꽤 한산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개의치 않고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돌아서 기라는데 차가운 말이 등 뒤에서 들렸습니다.


"어이, 도우미. 제대로 안내를 하세요."


 뒤를 돌아보려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굳이 나까지 눈 하나를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짧은 시간 동안 차분히 생각했습니다. 그 말을 뱉은 직원 입장에서.


 직원은 제대로 일하지 않는 안내원을 여러 번 확인하고 내심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안내원은 그다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원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겠거니 했습니다. 사소한 실수가 방문객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면 책임을 지고 있는 직원 입장에서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니깐.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 명의 고객으로 방문했던 저는 꽤 편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말의 '톤'이 공기를 삭막하게 했습니다. 일을 할 때 '상-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위-아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한 시대이지만 일을 할 때는 정확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지 않으면 그르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내가 너보다 파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말이 있습니다. 그저 내가 지금 현시점에서 너보다 가진 권한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어찌 보면 졸렬한 말입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시간은 언제나 나중 된 자의 편입니다.


 나중 된 자가 권력을 잡은 사례는 역사상 수없이 많습니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조조에게 몸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견제하는 조조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천둥소리에 무서워 놀라는 척을 했습니다. 훗날 두 사람은 중원을 다투는 시대의 호걸이 됩니다. 삼당 합당에 반대했던 초선 노무현 의원은 과감히 탈당하고 정치적 암흑기를 거칩니다.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그의 나중 된 자였던 친구 문재인에 의해서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누구나 첫 발을 내딛는 시기가 있고 또 나름대로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습니다. 꽃을 피웠다는 것은 시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처럼 보이는 권한도 바람 한 번 불면 사라질 연기 같은 것이 아닌지. 혹은 그 반대로 바람이 불어 나중 된 자리에서 먼저 된 자리로 옮겨갈지도 모릅니다. 도덕경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회오리바람은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도 계속 내리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개인 하늘은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알기 어렵습니다. 먼저 나서기도 혹은 뒤로 물러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텃밭을 가꿔가는 것이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계절은 또 한 번 바뀌어 이제 곧 단풍이 지나갈 듯합니다. 꽤 매서운 추위가 덮치는 것을 보니 겨울이 오려나 봅니다.


자연은 때마다 반복해서 알려주나 간은 때마다 반복해서 망각합니다. 계절은 어쩌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내온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어느 시점에 먼저 되고 나중 될지 모른다고. 그러니 주변에 좀 잘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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