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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Sep 24. 2020

밥 한 그릇과 말 한마디

에세이 #58

 지난 금요일 지방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7개월 딸이 있는 집은 언제나 분주하고 혼잡합니다. 아내는 얼굴이 약간 상기되었는데 예상하건대 아마 동시에 3~4가지 일을 하면서 준비한 밥상이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요즘,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서 먹고 힘내라고 준비했어.'


 아내에게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가 고마웠습니다. 연어덮밥(사케동)이었는데 참 좋아하는 아보카도와 전복까지 들어간 근사한 밥상이었습니다. 거기에 쯔유 간장을 만들었는데 많이 짜지도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감칠맛이 도는..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진짜 맛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대략 '맛있다!'는 감탄을 4~5번을 합니다. 그런 저의 성향을 아는 아내는 동시에 4~5번 반복해서 말합니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넉넉하게 있으니깐.'


 그렇게 천천히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싱싱한 연어와 부드러운 아보카도가 입 속에서 자근자근 녹아갔습니다. 쫄깃한 전복의 식감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적당한 간장 소스가 감칠맛을 더하니.. 지금도 입에서 침이 고입니다. 또 먹고 싶네요!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실상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이 아닌지.


 매 끼니 분주한 가운데 허겁지겁 밥 먹으며, 은근히 비꼬는 말과 의도가 잔뜩 담겨있는 진득한 말이 난무하는 시간 속에 있다 보면 나를 깨우는 감동과 따뜻함은 저만치 멀어져 갑니다.


 밥 한 그릇과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못해 과분합니다. 아내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사람은 대체로 섬세한 경향이 있습니다. 섬세함은 상대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버거웠던 저의 한 주를 지켜본 아내가 생각한 것이 밥 한 그릇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도 맛있으니 참, 좋았습니다.


 가을에 부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잔잔하고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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