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파즈 Jan 23. 2022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요?

에세이 #66

 길든 짧든 삶을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그때 다른 방식으로 일 했다면. 혹은 그때 그 사람이 이야기한 것을 가볍게 흘리지 않고 들었다면.. 뭐 그런 아쉬움은 언제나 남기 마련입니다.


 2003년, 화창한 봄. 처음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인간의 생애주기는 비슷해서 결혼한 친구들은 일과 육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만나 어떤 이는 친구로 남았고 또 어떤 이는 지인이 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술도 꽤나 퍼마시고 내일이 없는 2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1년, 2년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각자 삶의 방향이 달랐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카드사에 취직한 친구 덕에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보험사에 취직한 후배 덕에 필요하지 않은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물론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서로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대학 친구와의 인연에 의지해 영업하고 있다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쯤은 서로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함께 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각자의 인간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30대 후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지만 밥 먹고 사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보니 묻고 답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고 부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집니다. 어떤 이를 만난 것은 후회로 남고 또 어떤 이를 만난 것은 기회로 연결됩니다. 사람을 잘 만나고 잘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


"나는 누군가가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과연 누군가가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 곤란했습니다. 내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가?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첫째,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졌다면 고맙다고 말하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아는 것은 내가 아는 것만큼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저의 사수였던 S는 무슨 일을 하든지 빼먹지 않고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oo 씨는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지만..'  저는 속으로 '이제 시작하는데 무슨 경험이 있겠냐? 그래, 그렇게 경험 많은 너는 어떻게 하는지 보자.'라고 수도 없이 말했습니다. 


 제가 혼자 속으로 험담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S를 돕지 않았습니다. 일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폭망. 그런데 S와 완전히 절연한 근원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S는 전형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끼친 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S는 그야말로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입니다. 10년 뒤에 얼마나 성장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높은 연봉뿐만 아니라 너른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어진 역할이 크든 작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성과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에게 달려있습니다. 어제와 똑같이 일하며 더 나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무 밑에 누워서 과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 자세만 바꾸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전 직장동료 K는 입사하고 1년이 지난 즈음에 돌연 퇴사를 했습니다. 조금 더 가슴 뛰는 곳에서 현장감 넘치는 일을 하고 싶다며 떠났습니다. K는 매사에 열심히 일했고 한 번 더 고민하려 했습니다. 신입이지만 가볍게 대하기 어려운 무게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K와 종종 연락하다 퇴사하고 2년 만에 소주 한 잔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K는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니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을 여실히 느꼈고 보다 근본적인 영역을 알아가고 싶다고 진솔하게 말했습니다. K는 결혼 후 유학을 떠났고 지금은 석사 과정을 끝내고 귀국해서 또 다른 직장에서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K가 잘될 것이라고 믿고 어디서든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도 남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글을 적고 멈췄습니다. 내가 써놓은 글에 빗대어 나를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누군가 이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다면 나는 부합하는가? 저는 사실 꽤나 뻔뻔하게 행동합니다. 물론 모르면서 아는 척한 적도 많기에 자신 있게 yes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말은 인격을 만들고 글은 인생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길잡이 삼아 2022년을 살아보려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는 어렵기에 어렴풋이 맞춰가려고 노력이라도 하고자 합니다. 내가 쓴 글이 내 삶을 바꾸는지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이 찾아오면 남 탓을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