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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Nov 29. 2021

불안이 찾아오면 남 탓을 합니다.

에세이 #65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삽니다. 어느 시점에는 그것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그럼 기존에 걸어왔던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대체로 그런 선택은 불행한 결과를 낳습니다. 


 저는 불안, 염려, 걱정.. 그런 감정이 찾아들 때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그르치면 주변에 엄청난 불행을 남기게 됩니다. 실수와 잘못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 삶이지만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올바르게 되돌리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불안과 염려가 마음속에 가득한 날이 있었습니다. 바쁘게 일하고 사람은 꾸준히 만나야 했습니다. 많은 자료를 빠르게 읽고 5명이든 30명이든 타인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생겼습니다.


 시간은 부족했고, 야근에 야근이 겹쳐서 먹는 음식마다 기름지니 체중이 증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벽 명상을 멈췄습니다. 독서는 고사하고 글쓰기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벼랑 끝에 서있는 느낌으로 보낸 지 5~6개월이 지나자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운동을 멈추고 2년이 지난 즈음부터 허리부터 뒷목까지 통증이 찾아오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여유가 사라지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평정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세웠던 원칙을 무시하고 고객사와 당당히 맞서지 못하고 비굴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따뜻함과 인내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려 했던 시도는 멈춘 지 오래였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과 활력은 급격히 감소하는데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다 보니 내 안에서 더 나올 것이 없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확신은 이내 공허감을 변해갔습니다.


 그러면서 제 입을 통해서 하루에 최소 몇 번 이상 내뱉었던 말이 있습니다.


"저 인간 때문이야.."

"저 XX가 잘해야 되는데.."

"아니, 이 자식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 친구는 왜 이 따위로 행동하는 거지..."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남 탓만 했습니다. 나란 사람은 불안하면 손쉽게 남 탓을 합니다. 무엇보다 교만과 건방짐은 불안과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나는 괜찮은데,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 바쁩니다. 사실은 그 환경도 대체로 내가 선택한 결과임에도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 자료를 검토하고 PT발표를 준비하며 오랜만에 문득 글을 꼭 써놔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글을 쓰고 무엇을 읽는 것 자체가 버겁기만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그 순간 찾아든 감정과 생각을 정돈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습니다. 


 가끔은 중요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이 찾아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과는 머지않아 관계가 마무리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찰나에 했다가 시간이 지나 잊어버렸지만 소름 돋을 만큼 몇 개월 뒤에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요즘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오겠구나.. 아니면 나 스스로 변화를 갈망하며 삶의 방향추를 한 번 돌려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꿈틀되구나..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끝없는 불안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 안에 단단한 돌멩이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하나 봅니다. 최근에 나를 짓누른 불안과 외부의 자극에 저는 속수무책으로 나 자신을 내어주고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물러서고 물러서다 더 이상 물러설 공간도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기 위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무작정 내 탓을 하고 나를 낮춰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의 결과를 남 탓만 하며 보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조용히 스며든 불안과 흔들리는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기하리만큼 억지로 억지로 써 내려가는 글에서 나를 돌아보고 새롭게 상황을 인식해봅니다. 자연스럽게 남 탓을 줄이되 그렇다고 그것이 오로지 내 탓이라는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어중간한 그 어디쯤에 새로운 길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지금 이 단락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려봅니다. 불안과 잦아든 남 탓 본능이 조금이나마 가라앉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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