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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Sep 16. 2021

내가 알잖아.

에세이 #64

 나이가 들며 정해놓은 답변을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찾아놓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복적인 말을 하다 보면 사고방식도 경직되어 사고의 확장이 넓어지지 않는 것을 부쩍 느낍니다. 어떤 문제, 어떤 상황에서든 정해놓은 답변을 거듭해서 읊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죠. 그렇다고 다른 답변을 찾지도 못하고 그 언저리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참 깝깝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마음도 굳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글을 긁적입니다. 보통 백지를 놓고 쓰고 싶은 글을 단어로 써보고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단어로 찾고 그 단어를 연결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잠시나마 굳어지는 생각을 이완시키고 완고 해지는 마음을 유연하게 해 봅니다.


 30대 후반을 지나는 요즘 운전하고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일상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 저는 그 믿음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자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더욱이나 생각이 굳어가고 마음이 완고해짐을 느끼고 쉽게 타인을 평가하고 파악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일상이 요즘 들어 더욱 빡빡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고 체력적 한계를 겪으며 마음에 부정적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타인을 야박하게 평하고 쉽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사고는 제한되고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누군가를 기다릴 여유는 찾기 힘들고 순간을 사는 불나방처럼 파닥거리고만 있습니다. 


 스스로 한심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때입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떻게든 끼워 맞춰보려 애쓰지만 그 남루함은 누군가는 속일 수 있겠으나 어찌 스스로를 속이고 나마저도 나를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알고 내가 내 마음을 아는데.


 가수 이상순과 결혼한 이효리는 방송에 나와서 남편과 겪었던 에피소드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같이 의자를 만들고 있는데 이상순이 의자 밑부분 그러니깐 아무도 보지 않는 부분에 사포질을 정성스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이효리가 말했습니다.


"여기 안 보이잖아. 누가 알겠어?"


이상순이 말합니다.


"내가 알잖아."


 내가 압니다. 나에게 버겁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할 수 있는 말이 부족하고 내 역량의 한계가 자명하게 보이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도 사포질을 더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압니다. 그런 시간이 쌓여가며 나 스스로 괜찮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름대로 그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딸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이것입니다.


"육아도 끝이 있어요."


 그 말을 해준 분을 지금까지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하루하루 남다르게 커가는 딸을 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이 녀석도 부쩍 커버리면 정말 육아라는 것도 끝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업무노트에 '공성이 불거(功成而不居)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라고 써놓고 하루 한 번 읽어봅니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일을 한다는 것은 내 밥벌이이자 찬란한 내 인생의 한 모금을 쏟아붓는 것이기에 가볍게 대하지 않으려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젠가는 무엇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그 속에만 거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끝이 더욱 빨리 다가왔습니다. 


 지난 8월 휴가를 떠난 산속의 작은 오두막에서 장작불을 지켜보며 불멍을 했습니다. 어찌나 밝고 환하던지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렸는데 내 눈앞에만 빛이 머무는 듯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불은 꺼지고 온기만 남은 모습을 보니 지난밤의 불빛은 지나가는 찰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찰나가 무의미하거나 덧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화려한 불빛도 또 타고 남은 재도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드러나는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아는 바는 나에게도 그렇게 빛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타고 남은 재로 치부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삶의 순환이자 과정입니다. 내 삶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두 눈뜨고 지켜보는 이는 하나님과 저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나만 두 눈 질끈 감으면 세상도 두 눈 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도 나라는 존재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반응하기 때문이지 세상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와 관계된 세상, 그것이 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내가 내 삶을 지켜보고 있고 끝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사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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