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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27. 2019

한 번도 걷지 않아 매끄러운 딸의 발

아빠 육아 #05


딸의 발을 종종 봅니다.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발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마저 포근해집니다. 발이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딸과 관련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특별한 것으로 다가오니 그것마저 신기합니다. 여느 때처럼 발을 매만지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기 발은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울까?


한 번도 걷지 않은 발이니깐.


응... 그렇지. 그렇네!



한 동안 저도 모르게 그 말을 곱씹고 곱씹었습니다. 군살은 고사하고 상처도 없고 굴곡도 없습니다. 아! 잘 먹어 살이 포동포동 올라서 매우 귀엽습니다. 한 번도 걷지 않았고 가시에 찔리지도 않았고 오래 걸어 발이 아픈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발입니다.


그러나 그 발로 평생 살아갈 수 없습니다.


둔탁한 길을 걷으며 가시에 찔리기도 할 거고 운동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오래 걸어 물집이 잡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편안한 길을 걸으며 여유를 느낄 때도 있을 겁니다.(그리 길지 않겠지만.) 그렇게 걷다가 얻는 상처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두 발로 서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때론 걷고 때론 뛰며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아내가 딸을 품고 있을 때 딸을 위한 기도문을 썼는데 그중 일부분입니다.

딸이 살아갈 세상에서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우산이 되어 주시고 마음껏 울고 즐거운 날에는 파란 하늘에 무지개를 보여주셔서 더 즐겁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매일이 권태로운 날에는 배낭 하나 메고 가볍게 떠날 용기를 가지고 여행을 할 때 달달한 아이스크림 하나가 주는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자주 유쾌하게 보내고 종종 슬플 때 눈물을 흘리며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딸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은 아빠가 되자!


문득 35살을 지나고 있는 제가 상처와 굴곡 없는 매끈한 발바닥 같은 삶을 살려고만 애쓰고 있지 않는지. 언제나 안전하고 위험은 전혀 없는 곳에서 잘 먹고 잘 지내면서 앞으로 세상에 나갈 딸에게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더 크게 꿈꾸라고 이야기할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이 평생 다치지도 않고 상처 받지도 않고 늘 행복하게 매끄러운 발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도 있습니다.


한 번도 걷지 않은 매끄러운 발. 그건 딱 이 시기에만 가지고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넘어지고 더 많이 상처도 내서 자기 발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딸이 자신의 상처와 역경을 이야기할 때 나도 내 이야기를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나름 위험했지만 흥미롭게 삶을 살았다고. 실패하고 좌절해서 삶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고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잘 극복하기도 했다면서. 너라는 딸을 만나서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어려웠던 시기에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는지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딸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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