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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12. 2019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없어요.'

에세이 #10


불쑥 진심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당시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언제나 따뜻했고 무엇보다 말하기, 듣기, 쓰기를 강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자기 생각을 대중 앞에서 말하는 발표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한 번 발표하면 한 개의 스티커를 주셨는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스티커는 매우 특별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스티커의 힘은 예상외로 강력해서 저는 스티커를 받고 싶어서 안 해도 되는 발표를 종종 하곤 했습니다. 과유불급. 항상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습조 편성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하셨고 스스로 토론해서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신 있게 손을 들어서 말했습니다. 재앙의 시작이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도 있고 못하는 친구도 있는데, 문제아가 들어가는 조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잘 섞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없어요!"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평소 잘 웃으시고 언제나 따뜻한 분이셨는데 제가 트리거를 당겨버렸습니다. 불같이 화내시는 선생님 앞에서 주눅이 들었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엄청 혼을 내셨습니다. (사실, 더 혼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나중에 저를 따로 부르셔서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지만 같은 반에서 함께하는 소중한 학생들이 혹여나 철없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불같이 화를 내셨고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친구들에게 더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해주셨던 것입니다. 참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억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건방짐이 드러나고 

성실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드러납니다.

몰입하지 않으면 대충 하는 것이 드러나고 

일하지 않으면 통장 바닥이 드러납니다.


진심은 불쑥불쑥 삶에 나타납니다. 숨기고 감출 겨를도 없이.





[사진출처 : 대구광역시 교육청 초등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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