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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26. 2019

푹 퍼진 라면, 조선일보, 반주.

에세이 #18 한 사람을 기억하며 떠오른 세 가지.

#01. 푹 퍼진 라면


인간은 말하고 글을 쓰고 행동합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습니다. 그 사람이 한 말, 쓴 글,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행동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푹 퍼진 라면, 조선일보, 반주입니다. 어머니와 외가댁에 찾아뵐 때마다 항상 도착 즈음에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면발은 늘 푹 퍼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번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왜 맨날 푹 퍼진 라면을 끓여 드세요?


옛날에는 그저 배를 채우려면 어떻게든 많이 먹어야 하는데 라면을 푹 삶아서 조금이라도 더 배를 채우려고 그렇게 먹었는데 이게 소화도 잘되고 속도 편하고 훨씬 좋아. 옛날에 말이야, 그러니깐 전쟁 끝나고 처음 남한으로 내려왔을 때도 그렇고 언제나 배를 곯았거든.


그런데 라면을 매번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은데 좀 줄이시는 게 낫지 않으세요?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내가 평생 먹었는데! 그라고 건강을 챙길 수가 없지. 배가 고픈데. 무슨 놈의 건강이야. 배고픈데.


네, 할아버지 라면이 참 맛있어요. 잘 묵겠십니다!



#02. 조선일보


20살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차서 허세 부리던 시기에 조선일보는 최악의 언론으로 치부했습니다. 도대체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언제나 조선일보를 읽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셨다가 월남하셨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잔혹성과 폭력을 온몸으로 살아내신 분이 가진 두려움과 적대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두려움과 적대심을 적절히 이용하고 보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선일보의 논조에 할아버지는 전적으로 동의하셨습니다. 전쟁 이후 홀몸으로 아무것도 없이 월남하셔서 정착하시고 온갖 고생을 다하시고 자녀들을 키워내신 할아버지에게 조선일보는 성경과도 같았습니다. '빨갱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지금 여전히 북한이란 국가가 가지는 가혹한 폭력성과 상처를 껴안고 사는 분들이 한국에는 많습니다. 여전히 평화를 기대하며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분들에게는 정서적 배려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저는 조선일보를 왜 읽으시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알량한 지식으로 할아버지를 이미 판단했고 조선일보 따위를 왜 읽으시는 거지.. 나는 이해 못하겠다..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꼭 한 번 물어볼걸 하곤 합니다. 할아버지에게 북한은 도대체 어떤 곳이었는지. 전쟁은 얼마나 무섭고 처참했는지. 솔직히 이렇게 각박한 인생이었는데 어떻게 사셨는지 참 궁금한 게 많아졌습니다. 탈북해서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한국으로 와서 적응하는데 제일 어려웠던 것이 있어요?


말투요. 제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한국 사람들은 표정이 조금 바뀌어요. 어차피 겉은 다 똑같으니깐 말투를 바꾸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말투요?


네, 말투를 듣고 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경우가 많아서.. 


아..(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완전 팩폭이라.) 그랬구나.. (급히 화제를 전환하며) 그런데 요즘에 한국에서는 김정은을 보는 시선이 꽤 많이 바뀌었거든요. 젊고 새로운 일을 할 것 같다는 기대도 있고..


꼴 보기 싫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 당 간부가 지 출세하려고 얼마나 우리를 쪼았는데요.. 먹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데 당에서는 필요하다고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데..(실제 사례 생략) 저는 꼴도 보기 싫습니다. 김정은이든 뭐든지.


네.. 그러실 수밖에 없겠네요.. 


대화를 마치고 할아버지가 조선일보를 읽는 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막연히 가지는 북한에 대한 어떤 종류의 호감도 이 분에게는 절절한 반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완벽하게 서로 다른 입장입니다. 북한 체재에서 총살당한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김정은은 분노의 대상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 간극은 도대체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지는 동일한 대상에 대한 정반대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서 한 개인이 비극적 상황을 겪어야 하고 전쟁이 끝나고 70년이 되어도 지속되고 있는지.  



#03. 반주


할아버지는 명절에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반주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큰삼촌부터 아무도 드시지 않았고 홀로 드셨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계신 집에서는 어느 누구도 술 한 잔 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집에서 술을 드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지금도 모릅니다. 어머니와 삼촌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삼촌들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소주 한 잔 달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주실 분도 아니었지만.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시는 할아버지는 취기가 오르시면 옛날이야기 그야말로 1.4 후퇴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매번 들어도 흥미로웠고 새로웠습니다. 충분히 말씀을 하시고는 들어가서 주무셨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기분 좋으셨고 술 몇 잔에 기쁘셨고 당신 이야기를 마음껏 하셨으니 더할 나위 없으셨을 겁니다. 온 가족이 떠난 집에 남으셨을 할아버지의 일상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04. 덧붙이며


세상을 떠나신 지 몇 해가 됩니다. 한 사람을 기억하며 가진 따뜻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살갑고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셨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내셨고 가슴속에 참을 인자를 몇 번씩이나 새기고 사셨을지 갸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문득 그가 사셨던 한반도의 역사가 가혹했고 개인으로서 견디기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생은 계속되어 자손에 자손이 뿌리내리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분이 견뎌낸 시간 그 어디쯤에 일부가 있습니다. 




[사진출처 : ID 무기야 사랑해, '18. 09. 26. 사이트 : eT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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