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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25. 2019

눈 감는 순간 생각날 만큼 좋은 날

에세이 #17

눈 감는 순간 생각날 만큼 아름다운 날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은 가볍고 기분은 상쾌합니다.

치카치카를 슥슥하고 차갑지도 그렇다고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은 물을 마십니다.

블루베리 베이글을 오븐에 넣고 기다립니다.

적당히 익어서 뽀송뽀송한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르고 으깨서 접시에 담습니다.

네스카페 롱고 아메리카노를 내립니다.

딸이 태어나고 커피를 갈아 마시는 호사는 잠깐 뒤로 미뤄뒀습니다.


때마침 베이글을 넣은 오븐에서 '땡'하고 소리가 납니다.

뜨거운 블루베리 베이글을 저글링 하듯이 나무 접시에 놓습니다.

정확히 반을 가르며 따뜻한 빵 냄새를 맡습니다.

네스카페 롱고 아메리카노는 언제나 맛있습니다.

블루베리 베이글 위에 꿀을 바르고는 아보카도를 넘치듯 바릅니다.

그 위에 통후추를 조금 뿌려 한 입 베어 물고는 꼭꼭 씹습니다.


아보카도가 부드럽게 느껴지면서 베이글 위로 꿀이 달달하게 입안에 퍼집니다.

담백한 베이글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 맛을 이어줍니다.

통후추는 아보카도 맛을 더 깊게 합니다.

꼭꼭 씹어 넘기기 전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아메리카노의 쌉싸름한 맛과 베이글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목으로 넘어갑니다.

완벽한 아침입니다.


아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매 순간 빵빵 터지는 것도 아니고 무겁게 진지한 이야기만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소소한 일상과 서운했던 것과 좋았던 것도 이야기합니다.


조금 있다 존재감을 뿜 뿜 하며 딸이 깨어납니다.

둘 다 방으로 가서 딸과 인사를 합니다.

기지개를 켜어주고 예쁘다고 꼭 말해줍니다.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밥을 다 먹었을 때도 카페에서 아기띠를 하고 안아줄 때도.

그때마다 제 눈에는 딸이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에게 있어 완벽한 아침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이 장면이 생각날 만큼 아름다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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