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안 된 건 엄마인 나였다.

엄마의 분리불안.

by 하히호

우리 첫째 아이가 3살을 앞두고

처음 어린이집 상담을 가던 날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다섯 살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워야 한다*는

책 한 권짜리 신념을

인생철학처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제 사회성을 키울 나이'라며,

아이를 좁은 시야 안에 가두고 있는 건

'너'라는 냉정한 말을 건넸다.


냉담한 말은 차가울 줄 알았건만

초짜 어미에겐 화기가 느껴지는 뜨거운 맛이었다.

그 화기에 쫄아든 비닐같이

옹졸한 초짜어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지못해 상담 날짜를 잡았다.


상담 당일,

혹시 우리 아이가 무시당하진 않을까 걱정돼

아이와 같이

좋은 옷, 좋은 가방을 챙겼고

아이 머리칼 한 올 한 올 더 정성스레 손질했다.


평소 짐이 들어가면 가방이오.

바퀴가 4개면 차요.

라던 본인은 어디 가고

주워들은 말로 나와 아이를 치장하기 바빴다.


가장 어쭙잖고 촌스런,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쓸모없던

나름의 기선제압 방식이었다.


비장한 만큼의 한껏 올린 속눈썹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았다.


집을 나섰다.


가는 길은 눈에 지나치는 장면일 뿐,

머릿속은 온통

뉴스에서 봤던 어린이집 학대 사건과

부실한 급식이 떠올라

심장은 설렘의 두 근 두 근이 아닌

빨간 망토의 뱃속 돌 꿰어진 늑대와 같이

무거이 두우근... 두우근 뛰었다.


아직도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내겠다는 고집이 굳건했다.

그야말로 내가 더 아이 같았다.


주변의 추천받은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하원 후인 저녁때라

어둡게 느껴진 실내와 달리

평온한 미소로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 모습에

그 요란스럽던 혼자만의 기선제압은 이미 1패였다.


상담을 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이미 나의 어쭙잖은 허세는 물거품처럼 사라진 채,

우리 아이가 언제 벌써 이렇게 컸나...”에

사로잡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이 비염의 콧물인

훌쩍이는 나를 보며 원감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

, 이성이 돌아온 지금

창피함에 추측을 거부하고 글을 넘긴다.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가...


그때 우리 아이는

엄마가 눈앞에서 눈물인지 콧물인지를 한껏 들이마시며

감성에 빠져 온갖 주책의 미를 펼치고 있는데

다행인지 어미와 달리

담백하게 어린이집 폼 미끄럼틀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상담이 끝난 뒤,

상담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돌아서며

“ㅇㅇ야” 하고 손을 내밀었을 때,

아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시져!"

하고 울먹이며

아기장사의 장딴지로 나의 이끎을 버텼다.


첫 반항의 현장이다.


뒤로 빠진 기저귀 찬 엉덩이만

봐도 완강한 거부의사가 확실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는 준비되었는데,

엄마만 아직 준비가 안 되신 것 같아요~”


... 맞는 말이었다.


분리불안은

아이가 아닌...

나였다.


지금,

그 아이는 좋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토대가 되어

초등학생이 되었다.

제법 씩씩하게 매일을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엄마의 이불킥 패턴 없이 수월하게 어린이집에 입학해 7세 왕언니의 역할을 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

아이들은 늘 준비되어 있다.


다만, 엄마라는 이름 아래

때때로 보호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아이의 선택을 대신 결정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훌쩍훌쩍

불신덩어리였던 나는

지금 어린이집 위원회 활동을 하며

선생님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함과 응원을 보내고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선생님들과

까르르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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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우리는 준비돼 있어요.

넘어져도 언제든 다시 일어났던 우리잖아요.

그 기특한 과정을

그저 따뜻하게 믿고 바라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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