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과 끔찍
뱃속 이야기 2편(-1, -2)을 가득 채운
‘기적의 아이’로 통하는 둘째에게는
안타깝게도 끝나지 않는 고생이 또 있었다.
체질상 분유가 맞지 않아
잦은 배탈,
엉덩이까지 헐어
그 작은 몸으로 생고생은 다 해본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예민할 수밖에 없던 둘째는
나에게 처음 겪는 새로운 관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웰컴 투 신세계로 안내했다.
첫째를 너무 사랑해서
둘째에게 사랑을 못 주면 어쩌나
걱정하던 사람들은
대체 다 어디 갔는지.
둘째의 작은 몸짓 하나,
기저귀를 말 한마디에 완벽히 떼는 영특함,
앙증맞은 애교,
삐졌을 때 병아리처럼 삐죽 나오는 입까지
모든 순간이 사랑스러워
어떠한 형태 하나
남김없이 맘을 녹여버렸다.
어쩜 이럴까.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어쩜 이렇게 깜찍할 수 있을까.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어쩜 이리...
떼를 부릴 수 있는가.
우리 둘째는
나를 초짜 엄마로 만들었다.
첫째 때는 겪어보지 못한
둘째의 ‘떼’는
치명적인 귀여움과 함께
치명적인 드러눕기의 정석—
두 팔, 두 발을 활짝 벌린 채
바둥바둥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웰컴투 엄마'
그러던 어느,
야박스럽게도 유난히 추웠던 1월.
차이나타운에 가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둘째의 눈에
캐릭터 풍선이 들어왔다.
이미 다른 기념품을 사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둘째에게
1단계 증조 증상이 시작됐다.
엄마는 불안했다.
아무리 봐도
바람이 빵빵해도 살까 말까 한데,
바람이 흐물흐물 빠진 풍선 앞에서
나의 구매 욕구는
마이너스를 찍었다.
나는 첫째 때부터
아이에게도 어른에게 말하듯
설명을 자세히 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간식을 사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두 팔 두 발 벌린 채
환영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똑똑.
'어미 모, 준비는 되었는가...'
2단계, 버틴다.
외출의 묘미로 하나 더 사줄 수도 있었지만
둘째가 선택한 반항 방식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고
다시 한번 설명한 뒤
손을 잡고
차이나타운 메인 사거리 중앙에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우리 둘째는
통도 크지...
그 메인 사거리를 돌침대 삼아
3단계, 눕는다...
머리숱이 없어
미술용 1호 붓처럼
어미의 정성이 담긴 고무줄 묶기법으로
힘없이 살랑거리고 있는데,
반면, 고집만큼은
20호 붓처럼 굵직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이나타운의 명물이라도 된 듯
웃으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우리 딸,
스타성이 뛰어난가 보다.
같이 간 외 할머니와 첫째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셨다.
그 의미는 분명했다.
‘오늘 넌 엄마한테 제대로 걸렸다!!!’
일렉 기타 치는 락커도
퍼포먼스를 이렇게는 드러눕지 않을 터...
<비트루비우스 인간>처럼 드러누운 둘째와
그걸 내려다보는 나.
그 풍경은...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명곡은 역시 이유가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누운 둘째는
이내 지나가는 사람들의
토론 주제가 되었다.
“아이고, 우선 달래서 일으켜요.
바닥이 너무 찬데…”
“아유 아니에요.
지금 안 꺾으면 나중이 더 힘들어요.”
찬 바닥과 달리
우리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려 1시간 가까이
원치 않은 추억을 쌓고 있었다.
그러다 코 찔찔해진 둘째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손을 잡아달라는
화해의 신호를 보냈다.
나는 손을 잡아 일으켜
어둑한 골목으로...
아니, 이미 저녁이었어서
그냥 어둑한 골목인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외투를 벗어
아이를 돌돌 말고
조용히 말했다.
“아가,
엄마는 네가
차갑고 딱딱하고 지저분한 바닥에
눕는 게 너무 속상해.
너무 갖고 싶은 게 또 생길 수는 있어.
하지만 이 방법은 아니야.
지금은 너무 추우니까
집에 가서
다른 방법을 같이 생각해 보자.”
아이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엄마, 미안..."이라는 말과 함께
혼란스럽던 나의 마음도 같이 다독여졌다.
우리는 그렇게 극적으로 타협했고,
손을 잡고 간식을 사서
평화롭게 내려갔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부터
어미의 마음은 급해졌다.
한 시간가량.
차가운 바닥.
지금 필요한 건 뭐?
스피드!!!
빨리 집에 가
따뜻한 물과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아이에겐 단호하고
여유로운 가면을 썼지만
그 가면 안의 나는
아이보다 더 울상이었다.
그 후,
지금의 둘째는
누구보다 빠른 눈치와 판단으로
떼 하나 없이
삐약거리는 입으로
자기 마음을 설명할 줄 안다.
우리는 가끔
차이나타운을 지날 때면
아이에게 그 바닥을 탕탕 치며
놀린다.
“여기,
네 땅이잖아.”
"엄마,
내가 누워 있었을 때,
엄마는 한 번도
저한테 눈을 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엄마는
지금도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