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오노레 드 발자크.

오늘은 날씨는 해맑음입니다.

by 하히호


아이들을 재운 밤,
야식과 반주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
어머니와 나는 이 야심한 시각,
마른오징어가 놓인 야식상 앞에
‘사람 1, 사람 2’로 소환돼 앉아 있었다.

남편은
취향이 비슷해 말이 잘 통하는 장모님과,
집에서는 ‘장희빈’이 별명인
이간질왕 장꾸 아내 사이에서
소소한 야담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맥주 + 간단 안주 + 옛이야기.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과거로 돌아가
안주엔 없던
“라떼는~”을 하나씩 추가했고,
그럴수록 과거는
점점 더 어려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절.
남편의 시절.
나의 시절.

각자의 이야기에
감탄과 한탄이 적당히 섞여
서로의 말에
고개는 끊임없이 끄덕여졌다.

그러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오셨다.

“하히호는 말이야,
자식 중에
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자식이야.
어릴 때 너무 순하고,
항상 자기보다 남을 먼저 챙겼거든.
그래서 더 속상했지.”

그리고 어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듯
그 시절 나에게
가장 많이 하셨던 말을 꺼내셨다.

“그때
내가 이 말을 제일 많이 했어.”

“하히호야,
너는 엄마 기도 속에 낳은
소중한 딸이야.
그러니까 제발
너부터 좀 챙기고,
속상한 건 속상하다고 말해.
안 그러면
아무도 몰라.”

그 말을 하시며 어머니는
지금도 가장 신경 쓰이는 자식은
여전히 ‘하히호’라며
추억을 얼굴에 묻히셨다.

어릴 적의 나는 그랬다.

까맣고 부스스한 반곱슬 머리,
키만 큰 깡마른 몸.

... 그 몸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하여튼 지금의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몸을 가졌던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이 걱정돼
끝 동네 사는 아이까지
다 데려다줘야 마음이 놓였고

고기 한 점이 남으면
내가 먹고 싶어도
“배불러~” 하며 참았다.

엄마가 새 구두를 사신 날엔
좋아하시는 모습이 좋아
외식 자리에서도 밥은 안 먹고

혹시 누가
우리 엄마 구두를
바꿔 신고 갈까 봐
신발장 앞에 쭈그려 앉아 지키던
까맣고 마른,
조금은... 아니...
많이 궁상맞은 꼬마 하히호.

그 기억 속에 잠긴
어머니와 나.

두 모녀는
다시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한
젊은 엄마와
어린 하히호를 떠올리며
잠시 웃고 있었다.

그때였다.

왜 그렇게까지 궁상이었는지
도무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의 남편이
추억의 문 앞에 다가와
노크를 했다.

똑. 똑. 똑

마치
‘이제 깨어날 시간입니다’를
알리는 알람처럼.

“장모님!!
소원 이루셨네요!!
하히호는 이제
절대 안 참아요~
그 소원을
완벽히 이루셨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

그날
나의 남편의 날씨는
해맑음이었다.

매우.

본인 농에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아마도
그 말이
자기 손에 들린 술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에게
재미 한 방을 선물했다는 듯한
저 뿌듯함.

그러니
저렇게까지
해맑을 수 있겠지.

ㅎ.ㅎ.ㅎ


오늘의 명언


“아내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을
남편은 알아야 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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