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는 남자와 춤추는 여자.
우리는 가끔
칭찬을 가장한 돌려 까기를 한다.
남편
“너는 조용히 잘 때가 제일 예뻐.”
나는
“오빠는 일하러 신발 신고 나갈 때가 제일 멋져.”
말은 웃고 있는데,
속은 슬쩍 긁는 장난 같은 것.
N연차가 된 부부이기에
가능한 농담.
예전 남편은
새벽에 일을 마치고 들어와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얕은 잠에 겨우 몸을 맡긴 나를
몇. 년. 째
인사를 명목으로 굳이 깨우고 지나갔다.
처음엔 인사인 줄 알았다.
몇 년쯤 지나니
나를 일부러 깨우는 것 같았다.
분노에 진화한 나는
야밤의 발차기로 답했다.
그렇게 그는 삐. 졌. 다.
반면, 나는
그가 출근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현관 앞에서 잠깐 숨을 돌렸다.
마치 교실에 선생님 나간 뒤
몰래 춤 한번 추는 아이처럼.
그러다 한 번은
두고 간 물건을 찾으러 돌아온 그에게
딱... 걸렸다.
하필 게다리의 춤을...
서로가 서로를
몰래 피해 숨 고르던 순간들.
세월이 조금 흐르고 나니
그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그는 새벽마다
모두가 잠든 집 안에서
자기 신발 벗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을
혼자 견뎌야 했을지도 모른다.
잠을 깨웠다고 욕을 먹어도,
그 한마디 투정마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소리로
듣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도 몇 년은 심했다.
그 시절을 벗어난 지금은 하하하 웃을 수 있다.
당시
나는 그가 예민해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숨이 막혀
잠시만이라도 눈치 없는 철부지이고 싶었다.
그래서 춤을 췄다.
아주 짧은 자유를,
현관 타일 위에서.
서로에게 서운했고,
야속했고,
가끔은 얄미웠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것 같다.
그것이 이기적인 방법일지라도...
그는 외로움을 깨우려고 나를 깨웠고,
나는 숨 막힘을 털어내려고 춤을 췄다.
이유가 거창해서가 아니라,
삶을 버티기 위해서.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참 많이 서툰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서로에게
“나 여기 있어” 하고
확인 도장을 찍고 있었던 셈이다.
각자 생존신호를 랄까.
다만 그 방식이 좀 별나고
'나'만이 강했던...
새벽 깨우기와 현관 춤사위였을 뿐.
결국 우리는
새벽의 외로움에서 버틴 자와
잠 부족에서 버틴 자는
말 그대로 '존버는 승리한다'이다
그때의 표현처럼
불안정했던 각자의 시간이 만나
한 지붕 두 새벽은 낳았다.
불안정 속에서 방법을 찾듯
우리는 현재 그 과정을 지나
서로의 수면은 절. 대 존중한다
수면과 같이
서로도 존중하려 노력한다.
'나'만의 방식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으로.
비록 아직 비끗할지라도...
**아내 설명서**
잠든 아내를 함부로 깨우지 마세요.
맹수입니다.
부득이하게 깨웠다면,
.
.
.
현금을 제시하세요.
리셋되어 사납던 눈빛이 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