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관계.

가장 가까운 타인과의 동행 ing...

by 하히호


부부는

참 기묘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집어 들 확률.

거대한 모래사장에서
같은 모래알을 동시에 고르는 일처럼
기적에 가까운 우연.

대구와 서울,
아무 연고도 없이 떨어진 두 도시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가며
사랑을 증명하던 시간들.

그 거리는
버스표 몇 장으로 계산되지만,
마음으로는
계절 몇 번이 오가야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소수점 아래 어딘가에 숨어 있던 가능성이
우리를 붙들어
결국 결혼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편이 가장 무서운 상대가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는
힘겨루기.

우리는 함께 고민했고,
함께 결정해야 했고,
그래서 더 자주 부딪쳤다.

처음엔 거대한 암석처럼
서로를 향해 굴러오던 감정이
점점 깨지고, 부서지고,
모래처럼 흩어졌다.

날이 선 말들이
사포처럼 마음을 갈아내던 날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과 내가 변한 건지


아니면
연애 때의 내가 눈이 멀었던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사라진 것 같고,
그 자리에
나를 노려보는 낯선 얼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제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찌르는 법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더 알 수록

찌르기는 더 정확하고 세심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내 인생의 모든 욕을 끌어다
그를 미워하던 내가
누군가 그의 흠을 말하면
제일 먼저 방패가 되었다는 것.
원수는 나인데,
전 편의 내용과 같이

남이 건드리는 건 또 못 참았다.

마치
내가 혼낼 수는 있어도
남이 혼내는 건 안 되는
그런 유치한 독점욕처럼.

머리는 이미 전쟁터인데
손은 이불을 덮어주는 모순.

잠든 그를 보며
온갖 복수극을 머릿속에서 상영하다가도
결국엔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방을 나서는 나.

습관일까,
아니면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일까.

혼란스러운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아이가 다쳐

응급실 앞에서 아이를 안심시키며
꿋꿋하게 버티던 내가
그의 놀라 전화한 “괜찮아?” 한마디에
무너지듯 울어버린 순간.

그건
안도의 눈물이었다.

부부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죽도록 미워하고,
헤어질 듯 싸우다가
결국은 같은 방향을 본다고 한다.

참으로
방향 한번 보기 참 힘든 일이다.

그렇게

앞으로도
두 개의 심장이
완벽히 맞춰 뛰는 일은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결정적인 순간엔
같은 속도로 달린다.

우리는 아직 진행형이다.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현재 고쳐 쓰는 중인 이 원고처럼.


지금은
조금 긁히고

조금 닳았지만

언젠가
흰머리로 덮인 서로를 바라보며
“그래도 우리, 잘 버텼다. 고맙다.라며

서로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를 건네는 날이 되길...


꼭 나란히가 아닌

내 앞에 그가 또는 내가...

내 뒤에 그가 또는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함께 걷는 중이다.





“여보,
그땐 서로의 책을 이해하려 한 게 아닌
밑줄 긋고 별표 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상대를 위해 책을 잔잔히 읽어주는 게 아닌

내 책만을 소리 지르며 읊어 됐던 거죠.


지금은 그냥
책 덮지 않고

소리쳐 읽지도 않고
계속 넘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사용감이 많아 환불도 힘든데
끝까지 읽어봐요 우리ㅎㅎ"



'남편과 나'편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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