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호에서 자란 아이-1

못된 x.

by 하히호


나는 못됐다.

어설프게 착한 것은
어쩌면 더 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엄마가 웃으면 좋았고
엄마가 행복하길 바랐다.

청소년 시기가 되자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엄마처럼 잘나지 못했을까.’

엄마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보통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 멀어진다고 한다.
무시하기도 하고, 벽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였다.

더 의지했고
더 미안해했다.

그래서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밖에서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의 힐링은 늘 비슷했다.

모델생활 시즌 때 번 돈으로
엄마와 새로 생긴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처음 보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

새로운 곳은
남자친구보다
엄마와 먼저 가야 마음이 놓였다.

그 이유가 있다.

청소년 시절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일을 나가게 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빈자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집에 들어오면
항상 맛있는 음식 냄새가 있었고

냉장고를 열면
하루 힘들었던 일을 위로하듯
먹을 것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항상 켜져 있는 집의 불.

“너희가 집에 들어올 때
어두운 집에 들어와
너희 손으로 불을 켜지 않게 할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셨다.

앞 편에서 말했듯
우리 엄마는
내 인생의 '신의 한 수'다.

나의 신의 한 수는

집은
방공호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밖에서 아무리 지치고 상처받아도
집에 돌아오면
다시 충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너무 힘들 때 무심코
'아 빨리 가서 쉬고싶다.'
라는 생각 드는 곳이 집이길...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공호의 조건은
특별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따뜻하고 든든한 것.

포근한 방패 같은 것.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를 완벽히 조합시켜 주셨다.

그런 사랑을 가득히 받은
딸이 결혼을 했다.

엄마가
내 삶의 원천이라고 말하던
그 딸이...

못된 X이 되었다





"드라마 악녀를 욕하던 내가...
악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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