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받아들이기 싫은 그것.
방공호에서
누구보다 안전하게 자란 그 딸이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이라는 결혼을 했다.
현실의 문제들에 깎이고 또 깎여
조각상처럼 단단하게 다듬어졌으면 좋으련만,
그 당시 깎여 나간 나는
어느새 흙먼지가 되어
흩어지던 시절이었다.
나의 일과 육아 때문에
60대의 삶을 내려놓고
다시 30~40대의 삶을 살아가신
나의 신의 한 수, 어머니.
같이 살며
그 괴로움 또한 노출되어
같이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힘든 모습 그대로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팔짱 끼고 걷던
그 딸내미는 어디 가고
혼자 팔짱을 끼며
한숨과 짜증 섞인 말투만 오갔다.
그 순간에도
악녀로 변한 딸은 마음만은
엄마에게 여전히 의지했다.
시간이 흐르고
괴로운 시절이 지나가고
일상이 다시 자리를 잡았을 즈음,
나의 신의 한 수는
여전히 밝고
든든한 나의 의지처였지만
세월이 흘러 있었다.
악녀는 역시 악녀다웠다.
엄마의 세월에 화가 났다.
인정하기도 싫었고
더 조급해진 내 마음에도 화가 났다.
예전의 조급함이
엄마를 향한 안타까움이었다면,
지금의 조급함은
못된 x의 그저 화였다.
헛 나오는 단어들,
여러 번 되묻는 말들,
새로운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들.
모든 것이 화가 났다.
오늘도 나는 톡 쏜다.
“엄마, 휴... 좀 잘 들어.”
“엄마, 그때 말했잖아.”
“엄마, 그게 아니라 이거겠지.”
악녀는
신의 한 수에게
아니꼽고 치사한 비수를 자꾸 꽂는다.
어느 날
지인의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장을 보고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던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문득,
만약 세월이 흘러
'엄마가 내 옆에 없으면
나는 어쩌지?'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엄마와 아이들과 걷던
늘 익숙하던 길이
순간 낯설어졌다.
그리고
그때,
밖에도...
집 안 어디를 봐도
엄마가 없다는 상상을 하자
다리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이
매연 나오는 배기구에
코, 입 대고 들이마신 것처럼
너무 따갑고 아팠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나의 모든 게 무너졌다.
내 몸, 마음, 이성 모두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악녀는
생각했다.
‘이 나쁜 x...’
이렇게 여전히 소중한
나의 엄마인데
나는
엄마의 세월을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날 지켜주신 만큼은
못 한다 해도
엄마의 세월을 인정은 해드리자.’
그리고
반성이 무색할 만큼
오늘도,
악녀는 여전히
고마움을 거꾸로 전하는 나쁜 x이지만
엄마의 세월에 대한...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받아들임을 위해
조금씩 힘든 노력을 하고 있다.
"엄마,
100세 되면 나랑 친구 하자는 말 기억해?
그때부터는 내가 엄마의 든든한 친구표 방공호가 될게.
그러니 내 방공호에 건강히 오래오래만 있어줘.
항상 고맙고 사랑해 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