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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Sep 05. 2023

훈육에 대한 관점의 변화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1.

당신의 눈앞에 당신의 키 정도 높이의 바가 놓여있다. 그리고 당신 보고 높이 뛰어서 넘어보라고 한다. 과연 넘을 수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는 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키 정도를 넘으려면 높이뛰기에 관해서 꽤나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초등학생 수준에서 자신의 키 정도 높이를 뛰어넘으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메달권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2. 

높이뛰기 바를 넘지 못했을 때, 당신에게 높이뛰기를 지도하는 코치는 어떻게 하는가?  왜 못 넘냐고 화내고 혼내고 벌을 주는가? 아니면 높이 뛰는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고 높이 뛸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훈련을 시키고 도와주는가? 아마 후자일 것이다. 벌을 준다고 갑자기 높이 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3.

교실에서 친구와 다투는 아이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린 어떻게 해왔던가. 아이가 친구와 사이좋게 '안' 지낸다고 생각해서 벌을 주고 반성문을 쓰게 하진 않았던가. 아이가 수업에 '안' 집중한다고 생각해서 주의를 주거나 화를 내면서 혼내진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이 과연 벌을 받은 다음 행동이 바뀌었던가? 


한 번은 몇몇 여학생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A는 너무 민폐를 끼쳐요. 좀 혼내주세요."

"얘들아, A가 언제부터 그런 행동을 계속 해왔어?"

"아주 옛날부터요. 걔 그래서 선생님들한테 엄청 혼났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그렇게 많이 혼났는데도 왜 지금도 안 변하고 있을까? 혼낸다고 걔가 바뀌는 거라면 진작에 바뀌어서 착한 애가 되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4.

다른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자꾸 갈등을 일으키는 아이들, 수업 중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짓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도 자기 키만큼 높이 뛰지 못하는 육상 선수와 같은 입장은 아닐까. 친구들과 사이좋게 '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모르고, '못'하는 것이 아닐까. 수업 중에 집중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못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알게 하는 것과 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일이 아닐까.



5.

'로스 W. 그린'이라는 분이 쓴 '학교에서 길을 잃다'라는 책을 읽고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나의 관점도 변했다.


아이들이 일부러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처벌이 아니라, 해낼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고 도와주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들의 문제행동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무시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화도 덜 났다.(답답하긴 해도 화는 확실히 덜 났다.) 혼내지 않고 아이를 불러서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나누고 약속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도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고, 나도 아이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조금씩 약속을 지키려는 아이를 도와주니 아이의 문제 행동도 조금씩 나아졌다.



6.

2020년에 4학년 담임을 할 때였다. 학생들 중에 zoom으로 하는 원격 수업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B와 C가 있었다. 원격수업을 여러 번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등교하는 날엔 제시간에 등교하지만 원격수업을 하는 날엔 어김없이 제시간에 접속을 하지 못해서, 결국 다음 날 (격일 등교를 하고 있었다.) 등교하고 나서 남아서 전날 수업 못 들은 부분을 하고 가곤 했다.


B와 C에게 화내고 혼내지 않고, 다만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이야기 나누었다. B는 알람을 10개 맞추겠다고 했고, C는 등교하는 날처럼 할머니 말을 좀 더 긴장해서 듣고 일어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 이후 B와 C는 제시간에 잘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B와 C가 제시간에 들어오는 건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도 정작 원격수업 때 해야 하는 과제들을 하진 않았던 것이다. 다시 등교하는 날 B와 C를 남겨 이야길 했다. 원격수업 도중 다른 일을 하지 않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이야길 나누고 각자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약속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과제를 수행하고 확인받는 빈도가 늘어났고, zoom에 접속해서 비디오를 끄고 딴짓을 하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7.

두 아들을 키우는 부모로서도 교사일 때와 똑같이 생각하고자 노력한다. 늘 '아이가 일부러 저런 문제행동을 하는 건 아니야'라고 되뇐다. 다만, 올바르게 행동할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거나, 올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 늘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로서 아이가 해낼 수 있게 지원해 주고 도와주는 일, 그것만 해주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8.

가끔 인터넷에 체벌 관련 기사의 댓글에 보면 죽도록 맞아봐야 정신 차린다며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말을 종종 본다.


높이뛰기 선수가 바를 넘지 못했을 때 죽도록 때리면 맞는 것이 무서워서 노력하다가 실력이 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죽도록 때린다고 해서 실력이 늘진 않을 것이다. 방법도 모른 채로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방법을 찾아서 알려준다면 굳이 때리지 않아도 실력을 더 쉽게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실에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도 결국 마찬가지로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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