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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Jan 29. 2024

교사로서 다시금 살아가게 하는 것

어제 옛 제자로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2017년, 4학년 담임과 2019년 6학년 담임, 2년을 함께 했던 제자 B였다. 긴 글 속에서도 4학년 때의 기억에 대한 내용이 나의 마음에 닿았다.


첫 발령지였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2016년, 담임 2년차였던 나는 첫 해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4학년 담임을 맡아 이것 저것 공부하고 교실에 적용해보며 도전하는 한 해를 보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대로 한 해가 흘러가진 않았고, 학년 말에는 교직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런 상태로 2017년, 학교를 옮겨 다시 4학년을 맡아 한 해를 보냈다. 그 때의 한 해는 정말 다시 없을 한 해였다. 학급 회의를 할 때마다 일주일 반성을 하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는 말이 기본값으로 나올 만큼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지 않고 배려해주며 지냈고, 나도 의욕적으로 이것 저것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호흡하며 일년을 보냈다. 그 전까진 학교 출근하는 것이 매일 두렵고 힘들어서 일요일 저녁이 되면 괴로워했었는데, 2017년의 아이들을 만난 이후론 더 이상 출근이 괴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어떤 수업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 부담이 아니게 되었고,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힘들지만은 않게 되었다. 일요일이 싫지 않게 되었고 월요병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B는 그 때의 제자이다. 2019년에도 1년을 함께 보냈지만 B에겐, 그리고 나에게도 더 특별하게 남아 있는 건 2017년의 기억이다. 선물같은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일년, B의 글에도 그 때의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었다. B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사실 정말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건 나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다시 교사로서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아이들이었고, 그리고 지금 또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해와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었으니, 진정으로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B가 쓴 글 중에서도  '선생님이 잠시 쉬어가려 뒤를 돌아보실 때가 있다면, 그 뒤에 저희가 서 있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를 울렸다. 너무 잘 자라줘서 고마운 아이들.


받는 돈이 많지 않더라도, 교권이 흔들려서 힘든 일이 많더라도, 결국 떠나지 못하고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건 이렇게 아이들이 보내주는 마음 때문 아닐까. 그리고 내가 교사로서 해왔던 것들이 의미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에게 의미 있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아이들로부터 알게 되었기에, 내가 잘못하진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 더 열심히 더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B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이 깊은 마음에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천천히 글을 적어 답을 했다. 감동과 감사의 마음이 잘 전해졌으려나. 

기록을 위해 B의 글을 블로그에도 남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OO이에요 ㅎㅎ 잘 지내고 계시죠??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고 연락 안 드린지도 꽤 된 것 같아서 연락드려봐요 

작년 스승의 날에 체육대회 끝나고 찾아뵈려 했는데 못 가서 너무 아쉬웠어요 ㅠㅠ 전 OO여고 와서 좋은 선생님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제 곁엔 좋은 사람들만 남아 별 걱정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쭉 알고 지냈던 OO이랑은 관심 진로가 비슷해 같은 공학 동아리에 들어가서 잘 지내는 중이고, □□이는 저랑 다른 고등학교에 가서 자주는 못 보지만 매달 한번은 만나는 동네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는 전학을 간 뒤 자주는 못 보지만 1년에 한두번은 꼭 시간내서 보는 것 같아요 ㅎㅎ 확실히 고등학생이 되니까 다들 바빠져서 시간내서 볼 틈도 없는 것 같아요 �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진로 정하기, 3배는 늘어난 시험범위, 각종 수행평가와 진로 적합성을 살려야 하는 세특 작성까지.. 새로운 활동이 너무 많이 생겨 2023년은 정신 없이 후다닥 보낸것 같아요. 가끔 할일 다하고 자기 전에 생각을 해보면 ‘아 초등학생 때가 좋았지..’ 하면서 가끔 OO초에서의 일을 회상해보곤 해요.

그럴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4학년 2반이에요 !!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장 행복한 해 중 하나로 뽑히거든요 ㅎㅎ지금 저희 학교에 OOO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고 다시 초등학교 4학년으로 돌아간다면 가치기입장을 더 잘 쓸 자신이 있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요. 아직도 버츄카드와 신청곡 우체통, 학급회의 시간과 투표할 일이 있을때마다 사용되는 이름표는 생생하게 기억나요 ㅋㅋㅋㅋㅋ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 OOO 선생님이라는 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공부 이외에도 살아가는 지혜와 여러 과정들을 정말 많이 배워갔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어요 ㅎㅎ 아직 고민 상담권은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ㅎㅎ 6학년 졸업 때 받았던 것 같은데 그것도 벌써 4년이나 지나갔는걸 보면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고 매정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느리게 가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지는 것 같아요. 고 1 여름방학 쯤 새로운 일상에 너무 지쳐 슬럼프가 왔던 적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를 회상하고 있던 절 발견했고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서 계속 회상을 하는 거겠지? 라고 느꼈어요 그때가 왜 행복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역시 선생님이 제 담임 선생님이셨기 때문이겠죠??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만큼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 선생님을 만난 것이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저희 앞에선 항상 밝기만 하셨던 선생님, 물론 지치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늘 저희 편을 들어주셨듯이 저희도 늘 선생님 편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젠 저희도 컸으니..!! 선생님이 잠시 쉬어가려 뒤를 돌아보실 때가 있다면, 그 뒤에 저희가 서 있겠습니다 ㅎㅎ 

선생님이 저에게 주신 많은 지혜와 지식들을 이 글 하나로 전부 보답하진 못하겠지만, 이 글 하나로 지친 선생님의 마음이 조금 치유될 수 있다면 전 그걸로 만족해요!

그리고 저 말고도 이렇게 생각하는 제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주 연락드리려 했는데 너무 바빠서 이제서야 연락 드리는 점 죄송해요 ��

늦었지만 2024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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