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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Aug 11. 2023

기억력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일지도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학습부진아 지도를 하고 있다. 1학기에 하던 아이들 2명에 2학기에 새로 2명이 더 신청하여서 4명을 데리고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에 공부(주로 수학)를 가르치고 있다.


수요일 첫 수업을 했다. 4학년 아이들이지만 수준 점검을 위해 3학년 2학기 수학 문제를 준비해서 풀게 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이들은 쉽게 문제를 풀지 못했다. 특히 나눗셈 문제를 어려워했다.


그렇게 문제를 풀며 진땀을 빼고 있던 도중 1학기에도 수업을 들었던 남자아이 D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저는 기억력이 쓰레기라서 못 풀겠어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D의 옆에 가서 앉은 뒤 질문을 하나 했다.


"D야. 너 뭐 좋아하는 거 있어?"

"게임 좋아하는데요."

"무슨 게임?" 

"로블록스요."


D에게 게임 이름을 들은 나는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게임 이름 기억하네? 기억력 좋네!"

D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매일 하는 거니까 아는 거잖아요."

"D야. 진짜 기억력이 쓰레기라면 매일 해도 게임 이름 기억 못 할걸?"

"아?"

"네가 게임을 매일 하듯 수학을 매일 한다면 수학도 게임처럼 기억날 거야. 매일 안 봐서 기억이 안 나는 거지. 네가 기억력이 안 좋은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해주니 D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게임에 대한 이야길 이어나갔다.

"로블록스 안에서는 ~~~ 를 할 수 있는데~~"

"너 그런 것도 알아? 선생님은 모르는데"

"그거야 선생님이 안 해보셔서 모르는 거 아니에요?"

"맞아. 안 해봐서 처음 들어보는데. 근데 너도 수학을 많이 안 해봐서 어렵고 모르는 거 아닐까? 네가 수학공부를 게임처럼 매일 한다면 잘 알게 되지 않을까? 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안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선생님이 게임을 모르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D에게 나눗셈 방법을 다시 알려주니 D도 1학기에 했던 게 기억이 나는지 '아! 알겠다' 하며 나눗셈 문제를 열심히 풀어나갔다. 물론 그 자신감 넘치는 자세는 20분 정도 뒤 사라져서 결국 내준 문제를 다 풀진 못했지만, 잠시만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느껴본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자기 자신을 낮춰보지 않는 것. 늘 부정적인 말만 들어오며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아이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자기 생각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며, 나름 괜찮은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학, 국어, 이런 것보다도 말이다.



20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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