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쌤 Aug 11. 2023

도덕성과 반성문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반성문을 쓰지 않는 것의 관계

오늘 퇴근 전까지 남아있던 남자아이 D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회사라고 치면, 대리나 과장이라고 한다면 그 위에 사장한테는 잘하는데 아래 부하들한테 막 대한다면 그것도 도덕적인 것인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일단 평소에 내가 하던 생각을 정리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건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똑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적용해도 똑같아야 하는 것이 도덕적이라 생각하는데."

그 말을 듣고 있던 D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한 사람한테만 잘해주는 건 도덕적인 게 아닌 건가요?"

"음... 선생님 생각은 이래. 같은 것엔 같게 하고 다른 것엔 다르게 하는 게 도덕적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는 장애를 가진 것에 대해 배려해 주는 것이 도덕적인 것이지. 우리랑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 근데 아까 회사에서는 사장님이든 부하 직원이든 '똑같은 사람' 이니까 같게 대우하는 게 도덕적인 것 같아."

말을 듣고 있던 D는 이해한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만 볼 수 있었지만 표정을 대충 짐작할 순 있었다.)


D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럼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비결? 같은 게 있나요?"

"응? 뭐, 비결이라니?"

"선생님은 어른들 중에선 좀 더 도덕적인 것 같아서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괜히 부끄러워졌지만, 그래도 성의껏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봐줘서 정말 고마워. 비결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선생님은 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 선생님도 네 나이 땐 일기 쓰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친한 친구가 권유해서 교환일기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었거든. 일기를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도덕적인 오늘의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네가 보기에 내가 도덕적인 사람 같다면 아마 일기를 쓴 덕분이 아닐까 싶어."


D의 얼굴에서 무언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이 일었다. 나는 컴퓨터로 계속 일을 하면서 D와 이런저런 이야길 더 이어나갔다. 오늘이 월요일이란 이야길 하는데 D는 월요일이 예전엔 싫었다고 했다.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이 혼내고,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심한 날은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해서 1~3학년 동안엔 학교가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와선 반성문 쓰지도 않고 내가 늘 말로 타일러주고 해서 학교가 좋아졌다고 했다. 나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웃긴 얘기 하나 해줄까? 선생님도 반성문 쓴 적 있어. 군대에서. 그때 부대 후임이 잘못한 일이 있어서 함께 반성문을 쓰게 되었는데, 주위 선후임들이 막 놀렸다니까. 선생님이 반성문을 쓴다면서. 그때 이후로 선생님은 학교에 돌아온 이후에도 반성문은 안 쓰게 한단다. 내가 써보니 별로 효과가 없더라고. 내가 스스로 쓰는 일기가 아니니까, 누군가 강제로 쓰라고 하는 반성문에는 진심을 담을 수 없다는 걸 알았지. 대신 반성문 말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도덕을 알려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열심히 공부했지. 네가 그런 나의 방법들을 좋게 생각해 준다면 나도 공부한 보람이 있네."


그렇게 조금 더 이야길 나누다가 D는 집으로 갔다. 작년까진 말을 듣지 않는다고 꼬리표가 붙어 왔던 아이였고, 3~4월 동안엔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교실에서 책상을 두들긴다던지 화를 못 이겨서 혼자 벽을 치는 등의 행동을 보였던 아이였다. 그런데 5월부터는 확실히 많이 좋아져서 친구들의 말에도 화를 잘 내지 않고, 감정 조절도 전보다 잘 해내게 되었다. 수업 태도도 많이 좋아졌고. 어려운 과제가 나오면 짜증을 내고 안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조금만 도와주면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런 점을 칭찬을 많이 해주니 D도 학교 생활이 싫지만은 않게 느끼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학교 올 맛이 난다. 적어도 출근이 두렵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출근이 두렵지 않게 된 건 아마 반성문 같은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지도했고, 그런 지도 방법이 아이들에게 도덕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아이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2021.5.31.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들은 왜 그러는 거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