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으로서 나(1)
2021.01.04.
회사원으로서 나(1)
중학교 시절 몇 개의 꿈이 있었다. 그중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그 꿈이 없어졌다. 사실은 노력이라는 장벽에 겁먹고 스스로 포기했던 것 같다. 왜 그리도 공부하는 것이 싫었을까? 지금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저냥 점수에 맞춰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냈다. 학년은 올라갔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일상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호주로 가겠다’ 이야기 하고 떠나버렸다. 배수의 진을 치고 변화하여 돌아오겠다. 아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라며 편도 티켓만 끊고 호주로 떠났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전개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청년은 고난을 겪고 성장해서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천성이 게으르다. 그곳에서 잘 적응하여 한국에서와 차이 없는 생활을 하였다. 호주라는 낯선 환경이지만 들리는 언어는 서울말뿐 이었고 야속하게도 시간은 또 흘렀고 남들보다 돈을 더 내고 다시 편도행 티켓을 끊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에 오니 취업전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과는 당시 BK21이라는 제도의 혜택으로 대부분 석사과정까지 용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지도 교수님도 나에게 석사과정을 제안하셨지만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그 당시 누나의 남자친구가(現매형)이 초등학생 대상 여름캠프 프로그램이 있는데 와서 스텝으로 도와주지 않겠냐 제안했고 누나의 남자친구가 궁금해서 그 여름캠프에 동행했다.
그 캠프는 전라도 영광군 교육청에서 한 대학 스타트업에 위탁하여 진행되는 영어캠프였다. 원어민 2명에 그 대학 교환학생 신분의 재미교포 3~4명이 선생님이 20명 남짓 되는 초등학생에 2박3일 영어를 가르치는 캠프였다. 하지만 참석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이었고 수업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첫날부터 무척 힘들었다. 어린 친구들은 역시나 말을 잘 안 들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괜히 따라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생각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하얀색 티셔츠에 참석한 모두가 돌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대충대충 그림을 그리고 티셔츠를 돌렸다. 티셔츠는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왔다. 하얗던 티셔츠에 아이들의 감사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도 아니었고 그냥 스텝이었는데 그게 찡하고 마음을 울렸다. 캠프를 마치고 소감을 묻는 매형의 질문에 조금만 더 스텝으로 근무해도 되냐 물었고 그 물음을 시작으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 회사는 사실상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중학교 때 하고픈 꿈 중 하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 꿈을 꾸기라도 하면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나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