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도비 Jan 12. 2021

꼰대가 되어버린 나

2021.01.07.


꼰대가 되어버린 나


  포털 사이트에 꼰대라고 검색하면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 이라고 정의된다. ‘내가 꼰대야?’ 라고 묻는 질문에 아내는 앞에 비속어까지 붙여서 ‘어 꼰대야’ 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답변을 인정할 수 없다.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방에서 학교를 나왔다. 일을 시작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회사의 위치는 90년대 초 압구정오렌지족의 시발점인 압구정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압구정 4번 출구에 사무실이 있다니 모든 것이 맘에 안들 때에도 회사가 압구정 4번 출구에 있어 그곳으로 출근한다는 것이 최고의 자부심이었다. 압구정 출퇴근을 위해 집을 찾았지만 가격이 저렴하면서 마음에도 맞는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거리는 멀지만 지하철로 쭉 타고 올 수도 있고 가격도 저렴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이곳이 나의 서울살이 첫 번째 자취방이 되었다.


  글을 읽다 행신동과 꼰대가 무슨 관계지 라고 분명 궁금해 할 것이다. 행신동에서 빨간색 버스를 타면 바로 신촌으로 향한다. 게다가 밤늦게 까지도 이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나의 생활권은 신촌 그보다는 홍대로 옮겨졌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이 궁금했던 20대 청년은 군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도움으로 록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공연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자연스레 공연 관련된 콘텐트를 많이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청년은 매주 홍대 라이브공연장을 찾아 다녔다. 록 스피릿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회사원이었지만 머리만은 나의 록 정신을 표출 하겠다 하여 로커들이 다니는 홍대 헤어숍에서 요상한 머리도 했다. 물론 출근길에는 차분하게 만졌지만.


  매주 홍대에서 즐기는 문화생활이 좋았다. 친구를 통해 내가 즐겨듣던 뮤지션들도 만나고 그들과 순간을 공유했다. 그들을 통해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몇 년간이 록과 함께였다. 시간이 점차 흐르고 뜨겁던 록의 시대가 새로운 힙합 문화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할 때쯤 친구들과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서서히 멀어졌다. 록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했었던 록에 대한 애정이 사라질 졌고 그 무렵 아내를 만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 이후에는 보다 안정적인 삶을 꿈꾸게 되었다.


  ‘욜로’ 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었다. ‘지금 행복해야지’ 이러한 말에 20대 젊은 친구들부터 내 또래 친구들까지 ‘하고 싶은거 할래.’ 라는 움직임이 많이 보였다. 자신을 표출하기 위해 눈에 잘 띄는 곳에 문신도 하고 요상하게 머리도 하고 그런 친구들을 보면 입으로는 ‘쯧쯧’ 거렸지만 사실은 부럽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은데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지금의 것들을 포기하는 게 무섭다. 지금만 즐기기에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그렇기에 작은 일탈 마저 머뭇거린다. 그래서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걱정된다. 그렇기에 나에게 꼰대의 반댓말은 자유, 도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험 속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