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예찬(1)
2021.01.09.
목욕예찬(1)
추운 겨울날, 몸이 피곤할 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있으신가요? 저는 목욕탕이 생각나요.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1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서서히 적응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목욕탕을 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목욕을 좋아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앞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빠의 사랑인 것 같다.
이제는 많이 유해지셨지만 과거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금 손녀, 손자들을 보는 것을 보면 원래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그 당시 아버지상은 다정함 보다는 가장으로서 엄격함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회사원이었던 아빠는 매일 6시 출근해서 내가 잠들기 직전에 들어오셨다. 집에 오시면 항상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다고 큰 소리를 치셨다. 뒤돌아보면 고생하고 들어오셔서 뭐라도 본인의 소리를 내고 싶으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아쉽게도 일상에서 아빠와의 추억은 큰소리 치고 윽박지르셨던 것이 거의 전부였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집 분위기가 어둡고 슬프지는 않았다. 사랑스런 엄마 덕분에 나의 기억 속에 집은 핑크빛의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 아빠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바로 목욕이었다. 매일 6시 출근길에 목욕하고 퇴근길에 목욕 하는 것. 그래서 인지 아빠에게서는 항상 단정한 모습과 목욕탕의 스킨향이 났다. 이 취미는 4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아빠의 취미생활 덕분에 기억에 나지 않았던 시절부터 나도 목욕을 다녔다.
기억 없을 때부터 다녔던 그 목욕탕을 고등학교 때까지 다녔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아저씨들이 아는 아저씨였다. 그래서 목욕을 하고 나면 언제나 아저씨들이 시원한 음료를 사 주셨다. 빙그레 면접을 보면 입사동기로 모두 목욕 후 바나나 우유를 이야기 한다는데 나에게 목욕 후 음료는 ‘솔의눈’ 이었다. 어릴 때는 월목욕 개념이 없었다. 아빠는 월목욕자라 주차하고 입장하기 편한 목욕탕 후문만으로 입장하셨다. 그래서 중학생이 될 때 까지도 아빠가 몰래 입장 하는 줄만 알았다.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월목욕이라 후문 입장하고 나의 입욕비는 따로 내셨던 것을 알았다.
2차 성장이 올 때는 목욕탕에 가기 싫었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목욕을 안 간다고 하면 큰소리부터 치는 아빠 때문에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끌려갔었다. 결과론적으로 그 덕분에 자연스레 청소년이 되었음을 공개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빠는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없었다. 항상 큰소리부터 나왔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셨다. 하지만 목욕탕에서만의 예외였다. 실오라기 없는 상태에서 뜨거운 탕 안에 둘이 마주앉아 있으면 그간 못했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평소 에는 손 한번 잡기 어려운데 탕 안에서는 마사지 핑계를 대면서 손도 잡아보고 어깨도 주물어 보았다.
집을 떠난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집에 갈 때 마다 목욕탕을 간다. 원래 목욕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가는 것도 크다. 아빠는 키도 크고 덩치도 크셨다. 하지만 이제는 키도 줄어든 것 같고 배만 뽈록 나왔지 덩치도 줄어들었다. 목욕을 가면 시간의 흐름이 유독 느껴진다.
매일 저녁 아들의 목욕은 내가 시킨다. 목욕하는 동안 나의 아빠와 그러는 것처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아 오늘 아빠는 이래서 기분이 이랬어. 아직은 집 욕실에서 나의 무릎위에 아들은 앉혀 놓고 혼자 이야기를 하지만 아들이 크면 같이 목욕탕으로 가서 서로의 이야기를 우리가 앉아 있는 모습처럼 숨김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면 좋겠다.
글을 쓰는 동안 또 한 번 아들로서의 내가 아빠에게 잘하고 있지 못함에 대해 생각했다. 어서 코로나 끝나면 목욕탕가서 손도 한번 잡아 보고 어깨도 한번 주물러 주면서 보면서 아빠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