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묵에 대하여

침묵은 반드시 깰 필요가 없다

by 문하현

침묵은 때로 여백의 미와 같다.


대화를 하다 보면 짧든 길든 반드시 침묵이 찾아온다. 이야깃거리에 한창 빠져있다가도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듯 이야기가 뚝 끊어져서 할 말이 크게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는가? 그럴 때 침묵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따라 마음의 양상도 사뭇 달라지게 된다. 침묵의 의미는 생각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에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설명해보려 한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대화의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저 어색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라 입을 다물고 있는지를 구별하게 된다. 첫 번째, 즉 관심이 없다는 의미의 침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돌덩이같이 무겁게 느껴지는 바람에 나름의 작은 시도들을 통해 깨 보려고 한다. 여기서의 침묵은 일종의 진입장벽이고, 장벽을 해체하려는 목적에 있어 성공 여부는 상대방에게 관심이 생겨나는지에 따라 달려있다. 두 번째, 어색하거나 어려워하는 상황에서의 침묵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이런 경우는 단지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침묵이다. 내가 최근에 들어 깨달은 점은 이 상황에서의 침묵은 억지로 깨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에 한해서 수동적인 방법이다. 듣는 일에만 힘을 쏟게 되면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 있어 그 주제에 한정된 내용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제약이 걸리게 된다.


관찰의 진정한 힘이 발휘되는 때가 바로 이 순간이다.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면서 보다 적극적인 탐색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세세한 관찰을 시작하며 질문거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질문은 관심이 없으면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질문을 생각해 내는 동시에 관찰을 통해 상대방의 표정이나 눈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순간에 상대방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감정도 한결 명료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침묵이 사계절이 순환하듯 몇 번 생기고 깨어지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순간이 시작된다. 이 시점이 바로 관계가 단단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집에 함께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떠올려보면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가? 침묵을 억지로 깨려는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침묵이 시작됐다고' 자각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서로를 편안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침묵을 쫓아내려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때로는 달갑게 견디려 한다. 침묵이 곧 무관심하다는 말과 반드시 뜻을 같이하지 않으며, 되려 이해의 폭과 층이 넓어지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는 침묵이란 여백이 필요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격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