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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하여

술은 효율적인 수단이다

by 문하현

나는 기본적으로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1년에 술을 입에 대는 횟수가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술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지만, 대부분 술자리를 갖는 이유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수단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짜로 술맛을 즐기려 하는 경우는 논외로 하겠다.


술자리에 필요한 것은 술, 사람, 그리고 약간의 안주다. 사실 안주의 경우 술자리 성립 요소로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여하튼, 단순히 사람 몇 명이 술을 중심에 두고 모이면 금세 취기와 감정들이 얽히고설킨 물살이 술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을 덮친다. 여기서 술자리의 목적에 따라 관계의 방향이 정해진다. 예컨대 평범한 직장인에게 있어 술자리는 삶의 결들이 달라진 옛 친구들과 재회하기 편한 시공간으로서 여겨질 것이다. 술자리만큼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때가 잘 없다. 취하게 되면 근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묵혀왔던 감정들을 꼬인 실타래를 풀듯 슬쩍슬쩍 풀어 던지며 은근한 공감을 얻는다. 대화도 서로의 근황을 몰라 어쩔 줄 모르는 처음과는 달리 부담 없이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술자리는 심지어 개인차가 있겠지만 시간을 길게 뺏지도 않을 것이다. 본인이 마실 만큼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만이니 말이다. 꼭 재회의 목적이 아닌, 처음 만난 비즈니스적인 사이에서도 술이 있으면 친해지기 쉽다. 그러니 술자리는 비용이나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관계의 네트워크 진입 및 유지에 있어 상당히 효율적인 수단인 셈이다. 그렇기에 술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름 각별한 대상일 것이다. 꼭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더라도, 술은 페어링을 통해 맛있는 음식에 곁들여 마시게 되면 음식의 맛을 한층 극대화시키기도 하니 이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러한 장점들이 있어도 술은 권장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장점을 아무리 부각해도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나쁜 사례들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인 이유를 살짝 언급하자면, 건강적인 부분에서 먹지 않는 것도 있지만 술맛이 썩 좋지 않게 느껴지는 동시에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와 감정의 결이 안 맞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처럼 술을 즐기지 않는 부류에게 술은 그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것이다.


다만, 문득 평소 같았다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을 술집을 스쳐 지나가니 술자리를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마냥 불편하게 받아들일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에 참석했던 제주도 워크숍 이틀 차에 강의를 진행하던 심리학자의 말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활동은 "가까운 사람들과 특별한 공간에서 함께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술자리는 한 번쯤은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는 데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일 것 같다. 실제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술을 권유하면 딱히 거부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스스로 술자리를 쫓아다니지 않을뿐. 그렇게 생각하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술을 함께 즐기는 일도 끝을 모르는 영화필름처럼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삶의 순간순간에 편입시키는 시도도 해볼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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