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는 것.
역시 유튜브는 무궁무진한 글감을 어떤 내용을 써볼까 고민하던 차에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던져주곤 한다. '사랑'의 진짜 의미에 대해 줄곧 유지해 오던 내 관점과 사뭇 다르게 풀어나가는 영상은 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생각의 심해에 집어던졌다.
나는 사랑에도 무슨 형태든 '경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서로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너'와 '나'로 명확히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는 '너'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함이다. 어떠한 경계도 없이 '우리'로 합일되는 순간, '나'가 '우리'를 지배해 '너'를 '우리' 밖으로 쫓아내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영상은 '원래 둘이 하나였던 사람이 떨어져 있다가 다시 하나가 되고자 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통념을 언급하며 사랑을 '원자적 개인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설명을 들으니 문득, 내가 사람을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경계'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히 경계라는 담벼락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 아예 담벼락을 허물어뜨려야 '너'와 함께 '우리'로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우리' 안에서 경계를 적당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허문 흔적이 남은 땅 위에서 '우리'를 함께 살 집을 짓듯이 구축해 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와 '나'는 서로 원하는 바, 즉 각자의 욕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랑은 '너'와 '나'의 욕망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너'의 욕망은 곧, '나'의 욕망이다. 각자의 욕망이 사라진 곳에는'우리'의 욕망만이 덩그러니 남아있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욕망하고, 마음이 하나로 포개지고, 함께 나아가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욕망이 나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스쳐가는 꿈같은 허상일 뿐이고, 헤어질 때까지 '나'와 '너'로만 남을 것이다.
'나'와 '너'가 경계를 동시에 허물 수 있어야만,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 철통 같은 경계를 너무 높게 세우는 것만 같아, '나' 혼자서는 도무지 허물 수 없을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너'와 함께 '우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