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불안했다.
은연중에 언제나 문제에는 답이 있다고, 답을 얻어내려 집요한 탐색을 벌일 때가 있다. 애초에 '답이 없다'는 또 다른 가능성은 완전히 무시해 버린 채로, 끝이 있는 길이 아님에도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답을 얻어내려고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붕 떠 있어서' 불안감이 저절로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한 번 찾아오면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정답이든 아니든 답을 찾아내게 되면, 불안감은 밀려드는 편안함에 밀려 순순히 뒤로 물러나 있다가 다시 붕 뜨는 순간에 기습적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정답'이라고 지칭되는 결론들은, 사실 대부분의 경우 결과에 대한 사후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리스트업 한 답들 중 선택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면 정답으로,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오답이 된다. 결과를 해석하는 방향과 방식에 따라서 답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것이다. 심지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이 답은 정답일까, 오답일까? 애초에 정답과 오답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조차도 완전히 폐기해야 할지 모른다. 정말로 '답이 없다'. 무슨 답이든 '모든 답이 곧 답'이다.
물론, 예컨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같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자명한 '정답'은 있다. 내가 답이 없다고 말하는 문제들은, 앞으로 닥쳐올 '삶의 난제'들이다. 우리는 침습하는 불안감을 쫓아버리기 위해 답을 찾아 부러지지 않을 의자처럼 그 위에 덥석 앉아 꼼짝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애초에 답이 없다는 걸, 고른 답이 상황에 맞았다가도 어느새 어긋나 버려 또다시 다른 답을 찾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붕 떠 있는 나'를 억지로 의자에 앉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삶은 '애매모호한' 순간들을 견뎌가며 본인만의 해답을 찾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애매모호한 상태는 불안감에서 비롯되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기에, 우리는 이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해결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황들이 앞으로 필연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답이 아닌 거 같으면 다른 답을 고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