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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을' 말

하고 싶은 말이 아닌 '듣고 싶을 말'

by 문하현

대화를 하다 보면, 꺼내는 말들에도 분류표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꼭 해야 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침묵'도 표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분류가 나오게 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위의 분류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타인과의 대화에 임할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생각의 가지를 뻗어보면, 숨겨진 원석 같은 한 가지 분류를 발견하게 된다. 보통은 말을 너무 많이 했다거나 잘못된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샅샅이 따져보지만, 정작 상대방이 '듣고 싶을 말'을 꺼내는 일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아갈 수 없다. 타인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고, 빗방울처럼 수없이 쏟아지는 말들 사이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만 손바닥에 차곡차곡 모아담을 수도 없다. 설령 불순물들을 걸러내듯 듣고 싶은 말만을 하나하나 골라낸다 하더라도, 이 말들은 현실과 사고방식 사이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도록 활짝 열려있어야 할 귀에다가 듣고 싶은 말만 통과할 수 있는 막을 슬며시 내려버린다.


그렇지만 때로는, '듣고 싶을 말'을 건네주어야 할 순간들이 오기도 할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방이 '듣고 싶을 말'을. 듣고 싶을 말은 그냥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그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는지 살피고 있지 않다면, 듣고 싶을 말은 단숨에 '듣기 싫은 말'로 변질될 것이다.


듣고 싶을 말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때 건네주고 싶을 것이다.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거나 듣고 싶은 말을 제쳐두기가 쉽지 않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러므로 듣고 싶을 말은 말들의 분류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귀하다 할 수 있다.


듣고 싶을 말을 구성하는 문장을 한땀한땀 정성들여 조각해서 건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상대방 또한 말 속에 깃든 진심과 노력을 알아채야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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