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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배워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하여.

by 문하현

기성의 꼰대들을 넘어선 신흥 세대, '젊은 꼰대'가 등장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꼰대라고 지칭하기 전,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따져보는 일마저도 이제는 낡아빠진 방식이다. 늙은 꼰대든 젊은 꼰대든 간에 주변에서는 이미 알고 있어서 눈치껏 뒤로 물러나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이 혹시라도 '꼰대'라는 부류에 속하지 않을지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을 것이다.


'꼰대'라는 부류는 소수의 외계종족처럼 취급되는 것 같다.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은 오로지 자기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지구인과 소통하려고 하지만, 지구인은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지구는 '자신의 행성'이 아니라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로 인해, 외계인은 지구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행성에서만 잘 살아가면 그만이기에 굳이 그럴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저 꼰대와 나는 명백히 다른 부류라며 철저하게 선을 긋겠지만, 꼰대는 생각보다 훨씬 '되기 쉽다'.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의 회로에 주입시키지 않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꼰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꼰대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는 일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 새로운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고, 내가 사는 세상만이 유일하다'라는 이유로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꼰대의 길로 미끄러지게 된다. 새로운 세상이 잘못된 세상이라고 단정 짓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자신만의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유유자적하는 일에만 골몰하게 되고, 종국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무한한 가능성 자체를 단칼에 부정하는 상태가 맨틀처럼 단단해지는 과정이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평생 배우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뿐이다. 말은 쉽지만, 사람에게는 본능적인 확증편향이 내재한 탓에 개방적인 태도를 늙어 죽을 때까지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가 알았던 것, 편안하게 느끼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쫓기보다 조금이라도 새롭거나 평소와 다른 것, 내 생각이 틀렸다는 증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어쩌면 '노마드적'인,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생활 방식을 사고방식으로 고스란히 이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목민에게는 다양한 세상의 양태들을 흡수하기 쉽도록 뇌구조가 스펀지처럼 발달되어 있을 것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면, 새로운 곳에 대해 무수히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목민처럼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긴 어렵지만, 적어도 항상 새로운 것을 거부하지 않는 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이든 내일이든, 아니면 훗날이든 꼰대로 불리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도 새로울 나날들을 항상 두 팔 벌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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